UPDATED. 2024-04-29 02:15 (월)
“절망과 함께 춤을 추어라!”...인문연극 ‘세자매 죽음의 파티’ 화제
“절망과 함께 춤을 추어라!”...인문연극 ‘세자매 죽음의 파티’ 화제
  • 김재호
  • 승인 2023.04.25 1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 재해석...극단 피악 인문학적 성찰시리즈
5월 21일까지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

강렬한 춤이 고전과 만나 관객들과 만난다. 바로 희곡을 기반으로 한 인문연극 「세자매 죽음의 파티」이다. ‘씨어터-댄스(Theatre-Dance)’로서 춤을 연극적으로 도입했다. 이번 공연은 장례식장에서 시작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으로 끝난다. 지난 22일 관람한 연극 「세자매 죽음의 파티」는 삶의 혼돈과 절망의 끝을 보여주었다. 

안톤 체호프(1860~1904)의 희곡 「세 자매」(러시아어: Три сестры, 1901)를 재해석한 이번 연극은 다음 달 21일(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극단 피악의 인문학적 성찰시리즈 열다섯 번째 작품(레퍼토리시리즈 II)인 「세자매 죽음의 파티」는 인터미션을 포함해 190분 동안 몰아친다.

칼 마르크스(1818∼1883)에 따르면, 인간은 노동으로 인류의 구성원임을 깨닫는 ‘유적(類的) 존재’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노동(혹은 노동을 할 수 있음)을 통해 자연을 가공함으로써 전 인류적인 생산활동에 참여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노동이 지긋지긋하다. 노동은 인간이 유적 존재임을 알게 하는 유쾌하고 좋은 것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피곤한 인간 관계부터 육체적인 고통까지 끝이 없다. 「세자매 죽음의 파티」에는 자신의 사회적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에 매몰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인문연극 「세자매 죽음의 파티」는 5월 21일까지 대학로에서 펼쳐진다. 사진=극단 피악

 

고달픈 삶과 비루한 예술

「세자매 죽음의 파티」를 각색·연출한 나진환 성결대 교수(연극영화학부)는 이번 공연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공연이라고 밝혔다. “우리들의 삶은 어째서 이토록 고달프고 힘이 드는가?”, “우린 현재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 건가?”, “그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예술은 비루한 우리의 삶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이 사회에선 연극예술은 없어도 되는 예술인가?” 특히 배우의 대사를 통해 전달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시류에 휩쓸려 공연 지원비에만 목매다는 연극은 과연 쓸모가 있는가?”, “연극이라는 예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나 교수는 연출의 변에서 아래와 같이 적었다. 

“욕망은 언제나 욕망을 욕망하게 하고 그 욕망으로 우리를 규정하고 ‘우열과 희열의 환상’을 만들게 한다. 욕망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우리를 끌고 다니며 우리를 혹사시켜 결국 인간성을 박탈하고 우릴 죽음으로 내몬다. 그 결과로 욕망은 스스로를 확장해 나가며 이 거대한 대도시의 자본주의는 그렇게 확장해 간다.”

나 교수는 「세자매 죽음의 파티」가 “‘아름다운 인간’, ‘고매한 인간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라며 “세 자매, 명문 귀족, 세르게이 가문에서 인문학적 교육을 받고 자란, 고귀한 삶을 꿈꾼 사람들, 이들의 꿈이 운명에 의하여, 부조리에 의하여 어떻게 파괴되고 몰락해 가는지를 그려내는 그리스 비극의 성격을 띠고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나 교수는 삶의 절망은 결코 피하거나 희망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며, “절망은 사유의 대상이고 거리를 두고 탐구해야 할 연구의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바로 절망이자 부조리이기 때문이다. 

오종우 성균관대 교수(러시아어문학과)는 「세자매 죽음의 파티」 작품설명집에서 “체호프 작품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세상을 보는 넓은 시야를 준다”라며 “체호프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여 예술의 전망을 새롭게 밝힌 그야말로 위대한 예술가”라고 평했다. 

 

이번 공연은 강렬한 춤과 고전이 만나 씨어터-댄스로 진행된다. 사진=극단 피악

 

사방의 문과 갇힌 인간의 세계

「세자매 죽음의 파티」의 무대 미술은 강렬했다. 빨간색으로 둘러싸인 것도 그렇지만, 온 사방이 촘촘한 문들의 겹으로 이뤄져 있다. 모든 기회가 열려 있지만, 갇힌 세계를 상징하는 인간의 삶을 닮았다. 특히 벽면 중간중간 달린 마이크는 말과 언어로서 세계를 해석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는 것처럼 독백하는 배우의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빨간 의자 역시 공연에서 유용하게 활용됐다. 의자는 삶을 가두는 인간의 사회적 위치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무대 미술은 임일진 인천대 교수(공연예술학과)가 맡았다. 한편, 이번 공연의의 제작PD는 연출가인 조준희 동국대 교수(연극학과)가 참여했다. 

공연 속 주인공들이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무언가를 강하게 희구하는 듯했다. 배우자가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절망, 이루지 못한 인문학 교수의 꿈, 나중에야 깨달은 부모의 원수, 욕망에 이끌려 나간 결투에서 빼앗긴 목숨, 똑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독백, 삶을 구원하지 못하고 돈만 좇는 예술 등. 그러면서 프랜시스 톰슨(1859∼1907)의 「하늘의 사냥개」(1956)가 떠올랐다. 과연 우리의 안식처는 어디일까. 

네게서 모든 것을 빼앗은 까닭은
너를 해롭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
너는 그것을 내 품에서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
일어나 내 손을 잡아라, 그리고 내게로 오라. 

-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김용규 지음, IVP, 2018)에서 인용

「세자매 죽음의 파티」는 배우들의 춤과 자유로운 동작들이 눈에 띄었다. 올가 역은 김소희 배우, 마샤 역은 리다해 배우, 이리나 역은 권혜원 배우, 베르쉬닌 역은 한윤춘 배우, 체부띄낀 역은 김병춘·김미숙 배우, 안드레이 역은 김찬 배우, 나타샤 역은 안예진 배우가 열연했다. 

이번 공연은 인터파크에서 예매 가능하다. 자세한 문의는 02-742-1500 piac2021@naver.com를 이용하면 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