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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함께 2020년대를 이야기하자... 한국 대학원·학술장의 생존을 위해
이제 함께 2020년대를 이야기하자... 한국 대학원·학술장의 생존을 위해
  • 이우창
  • 승인 2023.04.24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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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의 『한국에서 박사하기』 서평에 대한 답변

“지금까지 우리는 상대의 세계, 다른 세대와 전공에 속해 있는 
연구자들의 세계를 보지 않고 살아왔다. 
결과적으로 세계학술장의 흐름은 알아도 
정작 한국이라는 ‘로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

 

이우창 성균관대 강사

지난달 출간된 서평전문지 <서울리뷰오브북스> 9호에는 필자가 기획자이자 공저자로 참여한 『한국에서 박사하기』(스리체어스, 2022)를 다룬 김두얼 선생님(명지대 경제학과)의 서평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기를」이 실렸다. 우선 부족한 작업물을 상세히 읽고, 사려 깊은 논평을 제공한 서평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이 글은 서평이 제기한 비판적인 논점에 응답하면서 한국 학술장의 개혁에 관한 생산적인 대화가 이어질 수 있는 물꼬를 트고자 한다.

『한국에서 박사하기』에 대한 서평자의 비판은 대략 두 가지 논점으로 요약된다. 첫째, 저자들이 한국 대학원·학술장에 제안하고 있는 대안이 대체로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대학원생 세미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등의 주장은 1980~1990년대 한국의 학술운동 문화에 대한 (비역사적인) 동경과 향수를 품고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

둘째, 이 책은 세계 학술장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신진연구자들의 열망과 고민을 전혀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좋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세계 각지의 대학에 진출하는 꿈을 이야기하는 대신, 국내 대학원·학계의 여러 문제들만 언급하는 수준으로는 한국 학계를 지배하는 패배주의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도·환경으로서 대학원을 마주하기

우선 『한국에서 박사하기』의 본래 의도를 짚어보자. 저자들의 주된 목표는 오늘날 한국 인문사회과학 대학원·학계의 위기가 가시화된 상황에서 이를 구성하는 여러 제도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을 짚어보고 개선의 방향을 논의해보는 것이다. 책에 언급된 개별 대안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저자들도 조금씩 의견이 다른 만큼 충분히 이론(異論)을 제기할 수 있다.(이에 관한 논의는 다른 공저자의 후속 기고에서 일부 다뤄질 예정이다.)

그러나 이 책이 1980년대의 향수에 젖어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에는 분명히 답할 수 있다. 2010~2020년대에 한국 대학원을 경험한, 또 경험하고 있는 저자들은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오히려 1980~1990년대의 학술담론에서 사실상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인 제도-환경으로서의 대학원·학계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평에서 암시하듯, 서구 학술장과의 교류가 가속화된 1990년대 이후 점차 한국 학자들이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풍경은 낯설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인문사회 학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연구자의 활약이 곧 한국 학술 제도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학원과 학술장이 지속가능한 형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의 개선과정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무슨 문제를 겪고 있는가부터 질문해야 한다. 이는 패배주의나 일국적인 고정관념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앞으로 한국 학술장이 세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연구자를 안정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과제다. 그것이 『한국에서 박사하기』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내딛어야 하는 발걸음이다.

80~90년대는 끝난지 오래다

내 생각에 이 대화가 좀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 번쯤 짚어볼 만한 사항 중 하나는 서평자의 논의에 잠재된 ‘역사적’ 도식이다. 거친 요약이 허용된다면, 먼저 1980~1990년대 한국 인문사회 대학원·학계의 중요한 동력 중 하나가 바로 진보 ‘학술운동’이었다. 진보 대학원생·신진 연구자가 자발적으로 주도한 세미나 문화의 성행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아직 한국 대학원 제도가 완비되지 않은 ‘비정상’ 상태였으며, 학자들 또한 일국적인 시야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 반대편에는 1990년대 이래 한국 대학원과 학계의 국제화와 선진화가 점차 수행되는 (서평자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변화가 있다. 여기에서 아마추어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학술운동 대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전문적인 학술활동의 대비와 같이 1980~1990년대 학번 연구자들을 휘감았던 논쟁적 구도의 흔적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다.

나는 1990년대 이후 우리 학술장이 겪은 변화의 상당 부분이 유의미했다는 진단에 동의한다. 문제는 위와 같은 논쟁 구도를 2010년대 중반 이후 신진연구자들이 제기하기 시작한 물음을 『한국에서 박사하기』를 이해하는 렌즈로 활용하는 게 과연 얼마나 생산적이냐에 있다. 단적으로 저자들은 한국 학술장의 국제화-선진화가 상당 부분 전개된 이후, 즉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투쟁이 후자의 우세로 어느 정도 일단락 된 이후의 대학원을 살고 있다.

서평자의 세대에서는 한국 학술장이 도달해야 할, 그리고 실제로 어느 정도 도달한 지향이었던 것이 2000년대 이후의 학번들에게는 새롭게 해결해야 할 문제이자 출발점이 된 것이다. 저자들이 학술장이라는 제도·환경·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따져 묻고 혁신해야 한다는 기치를 내건 이유다. 그 첫 시도가 많은 면에서 부족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시도를 퇴행으로 바라보는 인식이야말로 1980년대와 충돌하던 1990년대에 멈춰있는 게 아닐까?

“지금은 우리의 시간이자 당신들의 시간”

서평자를 포함해 이제 한국 대학원·학술장의 생존을 위해 책임을 짊어져야 할 1980년대 중후반~1990년대 전반 학번 학자들에게 보내는 전언으로 답변을 마치고 싶다. 지금 필요한 것은 2020년대 한국의 문제를 2020년대 한국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풀어가려는 노력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못지않게 지금의 세계를 만들어 온 당신들의 시간이기도 한 2020년대의 난관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못지않게 당신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상대의 세계를, 다른 세대와 전공에 속해 있는 연구자들의 세계를 보지 않고 살아왔지만, 결과적으로 세계학술장의 흐름은 알아도 정작 한국이라는 ‘로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로컬’의 문제는 ‘글로벌’로 해결될 수 없다. 글로벌은 그 자체로 무수한 로컬들의 집합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가 내민 손을 잡고 지금 여기로 오라, 그리고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우창 성균관대 사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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