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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성과로 내달리는 ‘학계의 가속화’…“우리에겐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양적 성과로 내달리는 ‘학계의 가속화’…“우리에겐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 전준하
  • 승인 2023.05.02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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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의 『한국에서 박사하기』 서평에 대한 답변2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국 박사 개개인이 
세계적인 슈퍼스타 학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한국 대학원과 학계에서 창출하는 지식이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게 만들어줄 기준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는 국경이 아니라 
함께 기준을 세우고 적용하기 위한 제도를 
설계할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는 가속의 늪이다. 
이 견고한 울타리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건 다름 아닌 브레이크다.

『한국에서 박사하기』 공저자로서 앞서 서평 답변을 쓴 이우창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결코 쉽지 않은 대화에 나서 주신 서평자 김두얼(명지대 경제학과) 선생님께 감사 말씀을 먼저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현직 교수가 우리 책에 서평을 썼다는 소식은 그 자체만으로 놀랍고 기쁜 일이었다.

서평자가 언급하듯 책에서 “지적하는 많은 문제의 원인 제공자이면서 해결의 열쇠를 쥔 집단”인 교수가 읽어주기를 내심 바라면서도, 경험상 그럴 일이 없을 거라며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대가 없던 상태에서 교수 신분을 의식해 응원과 독려 또는 자책과 반성만 담기기보다 책 내용에 충실한 비판적 서평을 받아 들고 나니 인사치레 대신 서평 내용에 응답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서평, 그에 따른 반성과 응답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대화가 한국 대학원과 학계 발전을 위해 저자들이 구상한 내용 너머의 논의로 이뤄지길 바란다.

교수신문 4월 24일에 실린 이우창 성균관대 강사의 '한국에서 박사하기' 서평에 대한 답변 기사다.

양적 연구성과 가속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서평의 주된 비판과 답변은 지난 4월 24일자 교수신문 기고(이우창)에서 상당 부분 다뤄졌다. 때문에 해당 내용을 반복하기보다 책에서 주된 문제의식으로 다뤄졌지만, 서평에서는 다소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된 ‘학계의 가속화’ 현상을 다시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리고자 한다. 서평이 해당 주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이 아쉬워 상기하려는 게 아니다.

저자들의 학문에 대한 인식이 한국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어 실망스럽다는 서평의 비판이 지금의 학계를 계속해서 가속시키는 힘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 힘에 저항하는 의미를 가진 책인 만큼 쉽게 받아들이거나 지나치기 어려운 지점이다.

책은 학계의 가속화를 주로 대학원생을 비롯한 신진 연구자들의 경험과 감각을 통해 설명한다. 학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개 양적인 연구성과 지표를 채우거나 늘리기에 급급한 우리의 모습이 너무도 익숙해서 별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빨라지는 속도에 맞추느라 몸과 마음이 힘들고 아픈 연구자를 묘사하기도 하지만 저자들이 가속화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책은 가속의 목적과 방향을 물으며, 내달리기만 하느라 놓친 사항은 없는지를 검토한다. 

예컨대 인문사회학계가 생산하는 지식의 쓸모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는 진단은 우리가 효율적으로 더 많은 지식을 생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을, 또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답하는 작업이 생략되었음을 암시한다. 획일화된 양적 기준의 연구 평가체계와 역시 ‘전임교원 되기’로 획일화된 진로계획을 다변화할 필요성을 논하며 우리에게 다른 방향이 없지 않다는 가능성을 떠올리기도 한다.

몇몇 심각한 침해 사건이 언론을 통해 교문 밖으로 알려지고서야 대학이 대학원생 인권 보호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이곳이 누군가 집요하게 문제 삼지 않는 이상 정말 기본적인 것조차 애써 눈감고 지나치곤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좋은 연구·연구자·대학원’은?

다시 말해 『한국에서 박사하기』는 가속화된 한국 학계가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질문들, 좋은 연구란 무엇이고 좋은 연구자란 누구인지, 또 좋은 연구를 만들고 좋은 연구자를 기르기 위한 좋은 대학원은 어때야 하는지를 논의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좌담회 내용을 바탕으로 쓰인 글이다 보니 형식적인 한계로 인해 서평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다소 일관되지 않은 개선방안을 늘어놓은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소 추상적인 담론으로 흐를 수 있는 문제를 현실에 가까운 언어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훨씬 구체적인 후속 논의를 가능케 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평을 다시 살펴보자. 서평자는 한국이 몇몇 산업이나 스포츠,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처럼 한국의 대학원과 학계 역시 글로벌 위상을 드높일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의 학문에 대한 인식이 좁은 나머지 ‘한국에서 박사하기’가 ‘세계를 향해 박사하기’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와 함께 책에서 다뤄지지 않아 아쉬웠다며 논의 주제 하나를 제시한다. 바로 좋은 학술지에 좋은 논문을 많이 실어 세계적인 슈퍼스타 교수가 되는 방안이다. 물론 서평자가 개별 연구자의 입신양명만을 중시해서 이와 같은 쓴소리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논의라고 하기엔 또 다른 의미에서 서평자의 좁은 인식에 기인한 비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가 어렵다. 저자들이 책에서 다루고자 했던 좋은 연구와 좋은 연구자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또다시 배제한 채 지금껏 학계가 그래왔던 것처럼 학문의 목적과 방향을 하나의 차원으로 축소하려는 관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약탈적 학술지에 실린 무수한 논문들

서평에서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한 획일적인 정량 성과 지표에 기반한 연구 평가나 약탈적 학술지와 같은 부실 학술활동 역시 책에서 직간접적으로 다루는 질문 ‘좋은 연구란 무엇인가?’에 답하기 위해 논해야만 했던 주제들이다.

최근 MDPI, Hindawi와 같이 부실한 운영에 대한 의심이 꾸준히 제기되어온 출판사의 학술지들이 SCI 및 SSCI 목록에서 등재 취소되는 일이 일어났다. 자세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루에 1개 이상의 특별호(Special Issue)를 모집해 거의 절반에 달하는 게재율을 바탕으로 한 해 수만 편의 논문을 싣는 비정상적인 행태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물론 이 사실만으로 해당 출판사의 학술지에 실린 연구를 모두 부실 학술활동으로 규정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 학계에서 게재한 이른바 SSCI급 논문 4편 중 1편 이상이 앞서 언급한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에 실렸다는 사실과 이 수치가 다른 국가와 비교하더라도 유독 높다는 사실 뒤에는 분명하고도 불편한 원인이 자리를 잡고 있다.(2021년 기준) 바로 SSCI 등재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이 곧 좋은 연구이며 그런 논문을 많이 쓰는 연구자가 곧 좋은 연구자라는 인식에 갇혀 있는 우리 자신 말이다.

빠르게 내달리느라 무시해온 질문을 논의하자

『한국에서 박사하기』의 저자들은 한국 학계와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우리가 빠르게 내달리느라 애써 무시해온 질문들을 논의하자고 제안한다. 좋은 연구란 무엇이고, 좋은 연구자란 누구이며, 이들을 생산하고 배출하는 좋은 대학원은 어때야 하는가? 책의 출발점은 분명 저자들이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지금 여기지만, 다루는 문제의식은 결코 한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국 박사 개개인이 세계적인 슈퍼스타 학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한국 대학원과 학계에서 창출하는 지식이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게 만들어줄 기준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는 국경이 아니라 함께 기준을 세우고 적용하기 위한 제도를 설계할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는 가속의 늪이다. 이 견고한 울타리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건 다름 아닌 브레이크다.

전준하 『한국에서 박사하기』 공저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대학평가와 ‘제3의 임무’ 제도화 :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사업 사례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를 했다. 대학 및 학술정책, AI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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