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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話頭
유월의 話頭
  • 김종철 서울대
  • 승인 2006.06.26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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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김종철 편집기획위원, 서울대 교수 ©

이 유월의 화두는 단연 축구다. 온갖 대중 매체들의 주된 기사도 축구고, 직장과 모임의 화제도 월드컵이다. 다들 앞으로의 경기와 관련한 모든 경우의 수를 내놓고 서로 점치거나 내기를 한다. 나아가 경기는 저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여기 길거리와 운동장에서, 또는 각자의 집안에서 밤을 도와가며 응원을 하고, 축구공의 행방에 따라 일희일비한다. 우리 시간으로 새벽 4시에 벌어지는 경기를 보기 위해 각자의 생체 리듬은 물론 사회 전반의 리듬까지 재조정하고 있으니 단연 축구는 이 유월의 화두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축구 자체보다는 축구를 응원하는 판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물론 경기의 승패를 우리의 국운과 결부시켜 보려는 심리가 없지 않고, 국운 대통의 징조를 경기에서의 승리로 가시화하기 위해 열망을 열광으로 전화시키는 양상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길거리와 운동장에 벌어진 잔치 마당에 놀고 즐기고 있다. 참선에서 화두 자체의 의미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듯이 축구 경기보다는 축구 덕에 벌어진 잔치판의 즐거움을 마음껏 추구하고 있으니 좋은 징조이다. 외국과의 경쟁에서는 무엇이든 이겨야 한다는 강박증이 수그러드는 경향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즐거움’을 유월의 숨은 화두라고 보고, 이를 흥미롭게 여긴다.

그러면서 나는 다른 달이 아닌 ‘유월’에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화두로 삼은 것을 더 흥미롭게 여긴다. 사실 1950년 6.25 이후로 우리 국민에게 유월은 심리적으로 무거운 달이 아니었던가. 특히 지난 세기 70·80년대의 유월은 4월과 5월의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열기를 호국보훈의 분위기로 잠재우는 달이었다. 호국보훈은 국민 모두가 해야 하는 일이건만 이상하게도 그 시절에는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었다. 그런 시절을 지나 6월 항쟁, 6.15 남북정상회담이 모두 유월에 이루어져 유월은 특히 민족과 민주가 화두인 달이 되었다. 이러한 유월에 이제 우리 국민 대다수가 축구를 화두로 하여 삶을 즐기고 있으니 분명 무언가 나아진 것임에는 틀림없다. 자고로 국민이 즐겁고 행복하면 그 나라는 태평성세를 구가한다고 평가되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보면서도 나는 한편으로 축구를 매개로 열광하는 모습이 진짜 즐거움의 표정일까 의심한다. 잔치가 끝나면 냉엄한 현실이 언제 잔치가 벌어졌던가 싶게 눈앞에 전개될 것이고, 그 현실 속의 난제들은 월드컵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국내외의 여러 정황을 보면 다음 유월도 민족과 민주 문제에서 자유로울 가능성은 거의 없고, 그것이 우리 일상의 삶을 속박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잔치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 점을 모를 리가 없기에 나는 이 유월의 열광이 진짜 즐거움의 추구일까 의심한다.

그렇다면 이 열광은 정작 무엇이란 말인가?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고자 하는 의도적 열광이나 현실의 불만에 대한 반어적 표현일까? 또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 난마와 같은 현실을 끌어안은 채 삶을 즐기는 연습을 하는 것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삶을 삶답게 하는 진짜 화두, 즉 활구(活句)를 찾기 위해 이 유월에 잠시 축구를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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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나그네 2006-06-28 21:33:36
딸깍발이 정신 물씬 풍기는 좋은 글입니다. 화두를 넘어 활구를 찾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