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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선생님
이런 선생님
  • 이상수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6.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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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이상수 / 편집기획위원·한남대 ©
천하의 영재를 교육하는 것만큼이나 낙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는데 바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일이다. 나에게는 그런 선생님이 있었다.

내가 그 분을 만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때였다. 그리고 내가 6학년이 되었을 때 그 분은 먼 곳으로 전근했기 때문에 가르침은 불과 6개월에 그쳤다.

우리 아들이 지금 5학년이니 그때 우리들이 얼마나 철없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런 우리에게 선생님은 많은 것을 가르쳤다. 매주 수요일이면 온갖 영웅담을 영화보다도 실감나게 들려주었다. 사명대사의 활약상을 묘사할 때 우리는 모두 숨을 죽이고 얘기에 집중했다. 선생님은 일기를 쓰게 하면서 날마다 그것을 읽고 첨삭해 주었다. 선행에는 반드시 칭찬했고 잘못에는 벌을 주었다. 음악에는 재능이 없었지만 글씨는 아주 좋게 썼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쥐를 잡아오게 했는데, 그 수염을 일일이 뽑았다. 그 걸로 붓을 만들면 좋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냥 신기해하면서 그것을 쳐다보았다.

날로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며 우리는 차츰 어른이 되었다. 한번은 선생님이 자습을 시키고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다. 그 개구쟁이들이 한 명도 자리를 뜨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때 나는 열심히 공부하면서 얼마나 신통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얼마 전 바로 그 선생님을 만났다. 30년 만이었다. 어떻게 변했을까.

만나 보니 선생님은 신선이 되어 있었다. 청년 못지않은 건강과 크고 활달한 목청은 예전 그대로였다. 선생님은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싶어서 조금 일찍 퇴직했다고 했다. 굳이 물어보지는 않지만, 老교사 1명이면 젊은 교사 2~3명 쓴다는 교육부의 공갈이 있을 때 자발적으로 학교를 그만두었을 것이라고 느꼈다.

정작 퇴직하니 주례니 뭐니 해서 오히려 공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산에다 손수 움막을 지어서 몇 달간 공부하고 나오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그리고 낮에는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잠도 서너 시간만 자는 듯했다. 내가 찾아간 날은 6시간이나 잤는데 전날 농사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고 했다.

뭘 공부하시냐고 물었더니 오랫동안 생각해온 저술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리고 짬짬이 비석도 번역하고 지역 향교지도 다시 썼다고 했다. 그리고 새벽에는 일찍 일어나서 몇 시간씩 기도를 한다고 했다. 아마도 명상이나 마음 수련 같은 것을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신선이 아니고 무엇인가.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의 삶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좋은 꿈을 심어주어서 30년이 지나도록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주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 30년 뒤에 어떤 훌륭한 사람이 찾아와서 그 때 그 강의 때문에 지금의 자기가 있게 됐다고 고백한다면 얼마나 고맙고 반가울까. 그리고 그때까지 변함없는 열정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아름다울까. 마치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바로 그 선생님처럼.

비오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생각해본다. 나도 신선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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