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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동양학, 세계에 통하다…‘기울어진 철학’ 바로잡을 수 있는가
한국의 동양학, 세계에 통하다…‘기울어진 철학’ 바로잡을 수 있는가
  • 이우진·조성환
  • 승인 2023.01.0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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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양명학: 한중일 삼국의 시야에서』를 읽고

“종래의 동아시아사상사 연구는 한국과 일본을 중국의 사상을 수용한 주변 지대로 파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한중일 삼국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접근한다.”

먼저 질문을 하나 던지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다음 책의 저자는 누구일까? 이 책은 일본에서 출간되자 학계의 반향을 일으키고, 이후에 대만과 한국에서 번역서가 출간됐으며, 다시 중국에서 번역·출간된 동양학 학술서이다. 이 책의 추천사는 세계적인 동양학자인 미국 하버드대학의 뚜웨이밍(杜維明) 교수와 일본 국제기독교대학(ICU)의 고지마 야스노리(小島康敬) 교수가 썼고, 중국어 번역은 저장성(浙江省) 국제양명학연구센터 소장인 치엔밍(錢明) 교수가 맡았다. 

혹자는 이 물음에 대해서 이렇게 답할지 모른다. “그 책의 저자는 일본이나 중국 혹은 서양의 저명한 동양학자가 아닌가?” 하지만 이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의 동양학자인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이기 때문이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의 책은 2006년 일본 페리칸사에서 『동 아시아 양명학의 전개』(왼쪽)로 처음 출간됐다. 이후 2011 년 대만대학교출판부에서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으로 번역·출간됐다.

이 책은 원래 『東アジア陽明學の展開』(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라는 이름으로 2006년에 일본 페리칸사에서 출간됐다. 그리고 2011년에 대만대학교출판부에서 ‘동아유학연구총서(東亞儒學硏究叢)’의 하나로 『東亞陽明學的展開』(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2016년에는 마침내 이우진 공주교대 교수가 일본과 대만에서 출간된 기존의 책에다 저자의 새로운 연구들을 추가하여, 한국어 번역본을 출간했다(정병규에디션). 2021년에는 드디어 양명학의 본향인 중국에서 『比较阳明学: 以中韩日三国为视域』(비교양명학: 한중일 삼국의 시야에서)이라는 이름으로 번역·출간됐다(上海古籍出版社). 

뿐만 아니라 뚜웨이밍 교수는 추천사에서 “동아시아 지성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 지성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고, 고지마 야스노리 교수는 “우리는 새로운 동아시아 유학사상사를 구상할 수 있다. 그것을 구상하는 데 있어 이 책은 선구가 될 것”이라고 극찬을 하였다. 한국의 동양학계에서 세계적 거장들로부터 이토록 높은 평가를 받은 책은 별로 없을 것이다.

 

중국이 사상적 우위 차지하는 게 맞나

그렇다면 최재목 교수의 양명학 연구서가 도대체 어떠한 책이기에 이토록 전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는가? 그것은 이 책이 다루는 연구 ‘범위’와 그것을 분석하는 ‘방법론’에 기인한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동아시아 양명학의 비교연구는 대개 중국과 일본의 비교에 머물러 있었다. 양명학이 동아시아 삼국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의 비교는 빈약한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최재목 교수의 ‘한중일 양명학 비교연구’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방법론에 있어서도 차별성을 보인다. 종래의 동아시아사상사 연구는 한국과 일본을 중국의 사상을 수용한 주변 지대로 파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중국이 사상적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책은 한중일 삼국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접근한다. 즉 한중일의 사상가들이 양명학을 매개로 자신들의 독자적인 사상 지대를 어떻게 형성하고 구축했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러한 독자적인 사상 지대가 어떠한 정신적 토대에서 유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 그 결과 양명학이 각 지역의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삶의 장’을 형성할 수 있는 소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사용한 이러한 새로운 방법론이 세계적인 동양학자들의 주목을 끌었던 것이다.

이 책의 구체적인 분석 틀은 왕양명(王陽明)의 치양지(致良知) 철학이 지녔던 중층적 구조에 있다. 구체적으로는 양지 본체에 중점을 두어 모든 행동을 마음의 본체인 양지의 분별과 판단에 맡기는 ‘적극적’ 측면과, 양지를 방해하는 인욕을 제거하는 양지 공부에 중점을 두는 ‘소극적’ 측면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왕양명의 치양지 철학이 지니고 있는 이와 같은 중층성이 그가 생존하였을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사후에는 그로 인해 다양한 분열이 일어났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분열 양상을 삼국의 양명학자들 사이에 논의된 ‘치양지론(致良知論)-만물일체론(萬物一體論)-인욕론(人欲論)-권도론(權道論)-삼교일치론(三敎一致論)’을 통해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논증한다. 

이 책이 다루는 한중일 사상가들은 광범위하다. 중국에서는 ‘왕양명-왕기(王畿)-왕간(王艮)-나여방(羅汝芳)-하심은(何心隱)-이지(李贄)’, 한국에서는 ‘허균(許筠)-최명길(崔鳴吉)-장유(張維)-정제두(鄭齊斗)’, 일본에서는 ‘나카에 토쥬(中江藤樹)-쿠마자와 반잔(熊澤蕃山)-오시오 츄사이(大鹽中齋)’이다. 이들 사상에 대한 비교 분석을 통해, 중국에서는 본체 중시의 적극적 측면이 대세를 이루었고, 한국에서는 공부 중시의 소극적 측면이 주를 이루었으며, 일본에서는 본체 중시의 적극적 측면이 한층 특색 있게 변모됐다고 분석한다.

 

유학은 생태위기·기후변화에 어떤 역할하나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동아시아 양명학자들의 명문장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차를 보고 관심 있는 주제와 인물을 찾아가기만 하면 아름답기 그지없는 양명학자들의 문장들을 만날 수 있고, 그 문장이 어떤 맥락적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친절하고도 깊이 있는 설명을 접할 수 있다. 그 설명들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동아시아의 양명학 지성사에 관한 이해를 넘어서 어느새 각국 양명학자들의 내면에 자리하는 ‘토착적 정서’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동아시아 삼국의 양명학이 각각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입장과 관점에서 새롭게 구축되고 변형되어 갔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기존의 철학사가 안고 있던 ‘중심·주변’, ‘정통·이단’이라는 이분법적 한계를 넘어서, 모두가 중심이자 정통으로 자리매김되는 다양한 사상과 철학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 삼국이 각자의 자리에서 요동치고 진동하는 바이브레이션을 통해 ‘수용·왜곡·해석’을 거친 뒤에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 역사를 복원시키고 있는 것이다.

 

후학이 저자에게 묻는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양명학이 동아시아 삼국에서 각각 어떠한 ‘위상’을 차지했으며 어떠한 ‘개성’을 지녔는지를 너무나도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탁월한 연구는 역설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명학은 여전히 동아시아라는 지역에 한정된 철학이 아닌가? 이 점에 있어서는 주자학도 예외가 아니다. 과연 성리학이라는 전통 철학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생태위기와 기후변화로 지구에서의 거주가능성 자체가 문제 되고 있는 오늘날, 유학은 인류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 

두 번째는 한국에서의 인문학을 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한국의 인문학은 여전히 ‘유럽중심주의’라는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철학 역시 예외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 등급이 매겨져 있다. 철학의 중심은 항상 ‘서양’이고, 비서구지역의 철학은 ‘주변’에 밀려나 있는 인상이다. 이 ‘기울어진 철학’의 현장을 우리는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가?

세 번째는 한국철학의 과제이다. 저자는 비록 중국철학 연구자이지만,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철학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한국철학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철학의 위상은 어떠한가? 철학과에 한국철학 과목은 몇 개나 개설되어 있는가? 반대로 한국철학 연구자들은 과연 얼마나 수준 높은 연구를 학계에 제공하고 있는가? 여전히 한문 번역 중심의 경학적 연구가 중심이 아닌가? 조선시대처럼 성인의 말씀을 신봉해서 ‘술(述)’에 머무르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래서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세 가지 물음을 후학으로서 선학인 저자에게 정중히 그리고 또렷이 묻고 싶다.

 

 

 

이우진 공주교대 교수·교육철학
조성환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교수·한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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