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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폐쇄·자기소외’ 한국학을 넘어서
‘자기폐쇄·자기소외’ 한국학을 넘어서
  • 이우진
  • 승인 2022.04.15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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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 소나무 | 252쪽

퇴계 전후 사상가들의 천관을 통시적으로 추적
조선전기 정치사상이 독자적 경치의 형태로 발현

우리의 한국학은 아직도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그것은 외세의 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하고 다시 전쟁과 분단을 겪어야 했던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서 기인한다. 주도권을 움켜쥐지 못한 채 타자들에 의해 강요된 한국의 근·현대사는 어느새 우리 내면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그 콤플렉스는 한국학을 ‘자기폐쇄’와 ‘자기소외’라는 상반된 두 방향으로 치닫게 했다. 

 

‘자기폐쇄’는 역사적 경험에 의해 심어진 ‘식민-후진국’과 ‘주변부-종속’이라는 모멸감과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역사의 위대성을 찬양하려는 노력이다. 아주 먼 옛날에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위대한 역사가 언젠가 다시 재현되리라는 나르시스적 입장이다. 역사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객관적 사실이나 과거의 위대성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느냐는 반성적 물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은 우리가 모멸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타자의 인정이나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는 우리만의 정신적 승리를 위한 ‘자기폐쇄의 한국학’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폐쇄의 한국학은 우리가 지니고 싶은 믿음과 신념일 뿐,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높지 않기에 그 영향력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기소외’이다. 자기소외는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정신적 식민지배로 구축된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이나 피해자였던 사람들이 자신의 인질범이나 가해자들에게 오히려 애착이나 온정과 같은 감정들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막강한 타자에게 장기간 납치당한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인 그들에게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반대로 피해자인 우리는 어느새 우리 자신에 대한 독자적인 의견과 해석을 내놓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의 틀을 무시하고 타자의 틀에 맞추어 우리의 역사와 철학을 해석하는 일이 일상화되었다는 사실은 역으로 자기소외의 한국학이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기껏해야 타자의 틀이나 해석에 대한 비판에 머물 뿐 그것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철학은 중국철학 연장선 아니다

이번에 나온 조성환의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은 이러한 ‘자기폐쇄’와 ‘자기소외’의 한국학을 넘어서고자 하는 야심찬 도전이다. 서두에서 “한국사상사의 서술방법론에 관한 사례연구일 뿐만 아니라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밝히는 시론”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기존의 한국학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저자인 조성환은 “종래의 한국사상사 서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더불어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한국사상사 서술의 시각이 중국이나 일본학계가 만들어놓은 기존의 틀이나 문제의식에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는 경향”에 의해 구축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저자의 지적대로, 우리는 ‘한국학의 자기소외적 방향’에 의해 한국철학의 독자적 개성을 찾기보다는,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중국철학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거나 해석하기에 급급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한국철학의 독자성을 질문하거나 고민하거나 논의하는 일은 어쩌면 ‘자기폐쇄의 한국학’에 함몰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기껏해야 몇몇 한국사상가의 독자성을 드러내는 데 머물렀을 뿐, 한국의 사상사 전반을 통해 우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다시 말해, 개별 연구에 치우쳐 한국사상사에 대한 큰 시각을 제시하는 데 소홀하였다. 아프지만 솔직하게 표현하면, 우리는 한국사상사 전반을 독자적인 해석틀을 바탕으로 일관되게 묶어내는 일에 실패하였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대담한 가설을 내보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뿐만 아니라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치밀한 고증과 세심한 분석을 수행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많은 한국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이러한 ‘용기’와 ‘노력’이 담긴 한국사상사를 목말라했다. 조성환의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은 그 갈증을 해소해주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의 대담한 가설은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이라는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늘을 그리워하고 두려워하며 마음속에 그리고 언설로 표출하여 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늘철학[天學]’ 혹은 ‘하늘-물음’에 대한 논의는 한반도에서도 뿌리 깊었고, 중국 유교의 전래를 통해 더 심화되고 강화되었으며, 인내천(人乃天)을 종지로 하는 동학의 출현에서 보듯이 근대에서조차 건재하였다는 가설이다. 여기에는 종래 ‘경천사상(敬天思想)’이나 ‘하늘철학’을 중국철학의 전유물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날선 비판이 담겨있다. 저자는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한·중 비교철학을 채택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종래에 당연시되어왔던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에 대한 입장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바는 외래문화의 수용과정에서 ‘수용자의 주체적인 역할’이다. 외래문화를 수용할 때 그것을 수용하는 지역의 풍토와 수용하는 자들의 성향에 따라서 모종의 변용이 일어난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 

놀랍게도 저자는 자신의 과감한 가설을 검증하는 대상으로서 조선사상사를 택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조선은 주자학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있었던 나라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저자는 조선사상사가 중국철학(주자학)의 엄청난 영향력 아래 있었다 할지라도, 이른바 중국적인(주자학적인) 것이 아닌 한국만의 독자적 특징을 내보인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 독자성은 ‘하늘을 섬기고 하늘과 교감해 온 전통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인문학적 배경’ 즉 ‘하늘철학’이다. 다시 말해, 조선사상사에는 한국의 인문학적 풍토에서 기인한 하늘철학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증명해내는 길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조선의 유학자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개념이나 표현이 중국문헌에서 유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상의 유사성을 넘어 그 의미상의 차이를 드러내야하기 때문이다. 곧 한국철학과 중국철학, 이 양자에 대한 나름의 명확한 이해뿐만 아니라 치밀한 고증과 세심한 분석을 수행할 때에만이 각각의 개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대개의 조선사상사가 ‘용기’만으로 가득 찬 가설로 머물거나 성과 없는 ‘노력’으로 그치곤 한다. 이 점에서 저자의 ‘용기’와 ‘노력’이 온전히 결합된 이 책의 가치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주자학·천주학·자생학과 하늘섬김

책의 부제가 ‘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이지만, 이 책은 조선사상사 전반을 다루고 있다. 그 중심에는 ‘퇴계-다산-동학’의 문헌들을 통해 하늘에 대한 공경[畏天]과 섬김[事天]의 태도가 두드러진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지만 말이다. 더불어 하늘철학의 표출방식에 있어 퇴계는 주자학의 언설로, 다산에서는 천주학의 수용으로, 동학에서는 자생학이라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실제 책 안으로 들어가 보면 조선전기의 정치사상이 한국인의 하늘철학(하늘섬김)이 성리학의 경(敬)개념과 결부되어 독자적인 경치(敬治)의 형태로 발현하고 있음을 논증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조선전기의 정치사상에서 나타난 하늘에 대한 공경과 섬김의 태도가 이후의 퇴계-다산-동학이라는 조선사상사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책은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퇴계 전후의 사상가들에서 보이는 천관(天觀)을 통시적으로 추적하는 방법을 취하면서, 퇴계학파와 주자학에서의 천관을 비교·고찰한 뒤 그 차이가 한국에서 동학을 탄생시켰다고 역설하고 있다. 

유학을 전공하는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이 책의 중심에 있는 퇴계철학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다.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의 마지막 부분을 검토하여 퇴계의 경학(敬學)이 천학(天學)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는 논증이나 퇴계의 독창적인 리도설(理到說)을 천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부분은 대단히 흥미롭다. 특히 퇴계의 리도설이 논리적 틀로는 체용론(體用論)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본적론(本迹論)에 더 부합된다는 저자의 독법은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대단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본(本)으로서의 리(理)는 우주론적으로는 만물의 생성을 설명하고 심성론적으로는 도덕 감정이 발하는 근원이며, 적(迹)으로서의 리(理)는 수양론이나 공부론 상에서 내가 그것에 진지하게 다가가면[卽物窮理] 그런 나의 노력에 응답하는 형태로 나에게 다가온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퇴계의 리도설을 ‘도덕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합리적 윤리학’으로 설명하거나 ‘주자학에서 양명학적 접근’을 시도한 외국 학자들의 입장들에 대한 저자의 치밀한 비판도 실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독자에게 스포일러(Spoiler)가 되는 것 같아 더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나는 저자에게 중요한 도전을 부탁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다루었던 ‘조선 전기 정치사상, 퇴계, 윤휴, 다산, 동학이 지닌 각각의 하늘철학’에 대해 치밀하게 설명하고 논증하라는 도전이다. 물론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사상사 전반을 다루려 했기 때문에 각각의 사상가들이 지닌 하늘 철학적 면모를 풍부하게 그려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상사의 독자성으로서 하늘철학을 통시적으로 부각시키려다 보니, 각각의 사상가에 대한 하늘철학적 분석이 소략하지 않았나 하다. 저자의 해석틀이 좀 더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이러한 작업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가 ‘자기폐쇄와 자기소외의 한국학’을 넘어서고 있음을.

 

 

 

이우진
공주교육대 교수·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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