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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교사와 매
학이사: 교사와 매
  • 황윤환 광주교대
  • 승인 2006.04.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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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환 / 광주교대·초등교육 ©
나는 남해안의 외딴 섬에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2년간 했다. 짧은 대학생활을 마치고 졸업과 동시에 발령을 받아 5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출발하여야 할지 난감하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매일 매일 학습지도안을 쓰는 것이었다. 내가 창안한 학습지도안이라기보다는 교총에서 발행했던 월간지 부록에 있는 학습지도안을 매일 그대로 베껴 썼다. 그리고 그 지도안대로 수업을 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그러나 중·고 시절에 몸에 베인 교과서 중심 암기위주의 수업이 주를 이루었고, 학생들의 성적은 변화가 없었다. 정말 오갈데 없는 섬에서 24시간 아이들만 바라보고 열심히 가르쳤음에도 학생들의 성적은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의 낮은 성적에 화가 난 나머지 아이들 모두에게 매를 한 대씩 때렸다. 그랬더니 상상도 못했던 현상이 일어났다. 그 다음 달 평가에서 학급 평균이 5점이나 향상되었다. 그 때 나는 내 수업보다는 매가 학생들의 성적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매달 시험을 봤으니, 그 다음 달에는 매를 두 대씩 때렸다. 그랬더니 학급평균이 10점이나 올랐다. ‘야아! 이거 매와 성적이 정비례하는 것 아냐?’ 하면서 다음 달에는 세 대씩 때렸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학급평균이 15점이나 올랐다.

‘이게 뭐야! 매만 때리면 점수가 올라가네!’ 나는 그 때 왜 옛날 서당 그림에는 매 때리는 모습이 있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 이후 매번 시험이 끝나면 내 반에서는 매타작 소리가 났었다. 그리고 마침내 군 학력고사에서 우리 반이 전체 1등을 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학교의 다른 학급과는 반 전과목 평균이 거의 30점 차이가 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수학 과목에서 내 반과 옆 반의 반 평균의 차이가 거의 50점에 가까웠다. 당시엔 교사들이 학교를 바꿔가면서 시험 감독을 했는데, 다른 학교 교사들이 채점을 하다가 의심이 나서 교육청에 사실을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감사로 나온 두 장학사들이 한 사람은 나를 교장실에 붙잡아 두고, 다른 사람은 내 반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확인을 하였다. 그런데 장학사가 물어본 질문마다 내 반 아이들이 풀려고 생각도 않고 답을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책을 모두 줄줄 다 외워버렸다고 감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나는 장관상 추천의 물망에 올랐지만 경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상하지는 못하였다. 사실 내 반에서 1등 했던 아이는 꼴찌인 동료의 멱살을 잡고 ‘이렇게 외우란 말이야!’ 하면서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시켰다. 왜냐하면 꼴찌가 틀리면 자신도 함께 매를 맞기 때문이었다.

이듬해 봄에는 학부모들 사이에 교장실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자기들 자녀의 학급 담임으로 나를 차지하려는 싸움이었다. 나는 2학년이 1학년 때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2학년 담임을 하게 되었다. 2학년들이 1학년 때 서울에서 좌천되어 오신 선생님이 가르쳤는데, 이들은 금요일에 섬을 빠져나가고 화요일에 들어오는 막가파였다. 지금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교장이 말려도 이런 저런 핑계로 빠져나가고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제대로 교육을 받았을 리가 없다.

2학년을 맡은 나는 내가 터득한 간단한 교수법(?)을 사용하였다. 매만 자주 때리면 점수는 올라갔다. 그것도 발바닥을 때리면 아프기는 한없이 아프지만, 자극이 강하고, 건강에도 좋고, 아무리 많이 때려도 흔적이 별로 남지 않고... 그저 시험보기 2주쯤 전에는 하나씩 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군 학력고사의 도덕 시험에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까요?’하는 문제가 나왔다. 이 문제는 매년 출제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내 반 아이들은 ‘수상~’ 이라는 말만 나와도 ‘113’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런데 그 문제가 시험에 나온 것이다.

내 반 아이들 모두가 정답을 썼는데, 단 한 아이가 ‘이웃집 아저씨’라고 써서 틀렸다. 당시 도덕 시험은 한 문제에 10점 짜리였고, 학생 수가 적었으므로 이 쉬운 한 문제가 학급의 평균을 1점 높일 수도 낮출 수도 있는 판국이었는데 한 아이가 틀린 것이다. 그것도 틀린 아이는 전교 1등을 하는 아이였다. 나는 다짜고짜로 아이를 불러내어 일단 매를 하나 때리고 물었다.

“어이, ‘수상’하면 뭐라고 했어? 어디 다른 사람들 ‘수상~’하면 뭐라고 했지?”라고 묻자 내 반 아이들이 일제히 “113 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 아이에게 매를 한 대 더 때리면서 “그런데, 너는 ‘이웃집 아저씨’가 뭐여?” 하고 핀잔을 주었다. 이 아이는 “저도 처음에는 113으로 썼는데요. ...”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썼으면 말지 뭐 하려고 고쳐!” 하면서 한 대 더 때렸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는 전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얼른 생각해보니 마을 이장님께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되어 ‘마을 이장’이라고 썼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마을 이장님은 아침 방송만 해놓고 바다에 나가시기 때문에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얼른 이웃집 아저씨에게 알려야 된다고 생각되어 ‘이웃집 아저씨’라고 썼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가슴을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져 버렸다. “꼴값하고 있네. 들어가!” 하면서 교사로서의 위엄을 지키려고 했지만, 그 때부터 나는 내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전화도 없는 이 섬에서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것도 조그만 아이가....’ .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교실에서 나는 멍하니 나 자신을 바라만 보았다. 저녁에 하숙집에 와서 잠을 자려는데 천장에 그 아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면서 밤새 내내 ‘어나, 113!’ 하면서 나를 괴롭혔다. ‘선생님, 작년에도 그렇게 가르쳤지요? 무조건 책을 외우라고만 했지요? 선생님은 뭘 가르쳤어요? 매 때리는 것 외에 무엇하셨어요?’ 하고 물었다.

밤잠을 설친 나는 이튿날 아침 일찍 그 아이를 불러 사과를 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 나는 더 배워야 해! 아직은 교사로서의 자격이 없어!’ ‘더 배우고 나서 아이들 앞에 서야해!’ 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사표를 냈다. 물론 다른 개인적인 이유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사표를 내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 12년을 더 공부하여, 매 학기 강의가 시작되면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 같은 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교육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사표를 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매 때리는 ‘매 도사’ 교사가 되었거나, 아니면 ‘효율적인 매 때리는 법’이라는 책의 저자가 되었거나, ‘매와 성적과의 상관관계’라는 논문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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