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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대학의 선택에 맡겨라
[대학정론] 대학의 선택에 맡겨라
  • 논설위원
  • 승인 2001.07.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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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24 15:59:25
최근 대학총장협의회와 대학교무처장협의회에서 교육인적자원부총리와 차관은 내년부터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일부 ‘비인기학과’에 대해 정원의 30% 한도 내에서 전공예약제를 허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른바 학부제에 따른 모집단위 광역화 정책으로 인문학과 기초과학이 고사 위기에 처한 데 대한 보완책으로 서울대가 내놓은 전공예약제를 다른 대학에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교육부의 정책에 대해 교무처장협의회에 참석한 전국 1백65개교의 교무처장과 입학처장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내기보다는 모순은 원천적으로 남겨둔 채 우선 비판의 화살을 모면하려는 미봉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또한 일부 대학에서는 교육부가 개선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획일적인 틀을 모든 대학에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교육부의 정책에 대해 대부분 대학의 교무처장들이 불신과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지금까지 교육부의 주요 정책이 교육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선 교육담당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상향식이 아니라 충분한 현장실험도 거치지 않고 교육부 관료들이나 일부 관변 학자들의 탁상에서 기안된 계획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상명하달식으로 추진돼온 탓이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감독하는 교육부의 관행은 회의에 참석한 교육부 관료들의 위압적인 자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들은 대학교육의 일선 담당자인 교무처장들에게 새로운 정책을 설명하고 토론을 통해 합의를 끌어내기보다는 일방적인 지시와 훈시를 함으로써 전국의 대학에서 일사불란하게 정책이 시행될 것을 기대하는 듯했다.

사실 교육부의 정책은 그 의도와 목표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국공립 대학과 사립 대학,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 대규모 대학과 소규모 대학 등의 여건에 따라 그 실효성과 현실성이 다르기 마련이다. 가령 학부제가 어떤 대학에서는 신입생 유치나 중복·유사 학과의 통폐합에 유리할 수도 있고 어떤 대학에서는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학부제를 채택하든 말든 그것은 대학 스스로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알아서 할 일이다.

교육부가 항상 말로는 학부제의 실시 여부는 대학의 자율에 맡긴다고 하면서도 학부제를 실시하지 않으면 재정지원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은 대학의 자율권을 짓밟는 횡포이며 이른바 시장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교육부가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는 것은 대학의 장래를 내 일처럼 걱정해서가 아니라 교육관료들의 권한과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관성 때문이다.

교육부는 국가정책적 차원에서 큰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고 세부적인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대학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교육부의 지시가 없더라도, 고교졸업생이 대학 입학정원보다 적어지는 상황에서 대학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학부제든 전공예약제든 자구책을 마련하도록 돼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구책은 대학 자신이 선택할 경우에만 추진력을 얻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대학의 특성화와 교육의 내실화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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