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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민주화 비웃는 문화예술
문화비평_민주화 비웃는 문화예술
  • 김진석 인하대
  • 승인 2006.04.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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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아주 수상쩍은 이름으로 전락하고 있다. 문화비평들은 그저 고상한 비판시늉을 하거나 심심풀이 꼭지로 신문·잡지 말미를 장식하는 진부한 타성에 빠진듯하다. 현실문화는 쓰나미처럼 세상 거리를 휙휙 휩쓸고 다니는 무서운 판에, 지식인 문화비평은 한참 뒤떨어진 채 싱거운 현학과 불평을 적당히 버무리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자괴감만 깊어간다.

가뜩이나 양적 평가만을 위한 논문을 대량생산하면서 무기력에 빠진 대학 안팎에서 문화적 혼란도 심각하다. 음악·미술·무용 등 모든 문화 분야에서 아직도 이론과 실기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꼴이라니. 러시아 가짜 음악박사사건이 터져서 꼴불견이었던 대학문화계에 다시, 연주자라기보다는 국악이론전공인 교수가 중요무형문화재에 선정된 과정에 권력의 압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을 제기하는 손가락이 ‘충분히 근거 있음’에서 ‘아무 근거 없음’ 사이에서 어수선하게 요동치는데, 사람들은 입을 가리고 그저 수군댈 뿐이다. 문화와 문화재는 추문에 빠져 허둥거린다.

쉽게 도식적으로 혹은 외국 모델만을 따라 결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대학이 기본적으로 이론적 연구에 치중해야 한다면 과감하게 실기와 현장을 대학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이 분리가 이뤄지지 않고 지연되면서 정작 실기를 표방하고 출범했던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석사학위 이상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니, 문화적 혼란이 따로 없다. 현장경험가가 필요하다면 학위는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니겠지만, 덩치만 비대해진 채 자격증만 양산하는 한국대학이 정말 실기교육을 제대로 담당할 수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따라서 현장경험가라고 무조건 교수로 임용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대학은 실기와 이론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압도하는 대중문화에 대해서 속수무책인 채 고급문화를 일방적으로 선호하고 상징화하는 오류에 빠져있다. 그런데 사실 이 두 문제는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고 서로 얽혀있다. 오늘날 문화 전반에서 고급문화가 차지하는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영향력이 감소한 데에도 소위 문화계 사람들의 혼란과 무감각이 크게 기여할 것이다(그런데 정작 지방자치단체들은 삶의 영역 자체를 문화적으로 바꾸는 데 주력하기 보다는 눈속임 이벤트효과를 위해, 거금이 들어가는 문예회관 건립을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 K군 D구는 1천9백78억 짜리 문화센터를 건립했는데 바로 이웃 I구도 9백95억 규모의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 건립을 추진한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런 예는 부지기수다. 일상생활 자체가 문화로 승화돼야 할 문화정책 차원에서 거꾸로 ‘문화예술’이 혼란을 낳는 주범 노릇을 하고 있으니, 문화 같은 아수라장과 복마전이 따로 없는 셈이다).

1940년대 이후 비판 이론은 ‘문화산업’을 비판했다. 그런데 그 문제의식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철저히 비시대적이다. 오늘날 문제는 고급문화든 대중문화든 산업화되고 상품화된다는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인정하거나 방관하거나 혹은 거기 기생하면서도 정작 마땅한 평가기준을 마련하지 못하는 ‘문화적 관점’에 있기 때문이다.

문화상품은 현재 오히려 산업 상품보다 더럽고 한심하고 불만스럽다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왜 그럴까. 산업화된 상품은 비교적 투명한 평가기준을 갖추고 있는 반면에, 문화예술은 마땅히 확보해야 할 질적 다양성도 확보하지 못한 채 불투명하고 부패한 평가기준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상품은 개인이나 집단의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소비된다는 점에서 그것의 상품화는 그나마 합리적으로 설명될 여지가 크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화적 아우라 혹은 예술적 상징이 상품에 추가될수록 그것의 생산과 소비는 점점 합리적 혹은 민주적 설명으로부터 멀어진다.

그 결과 점점 비실용적 성격을 띠게 된 문화예술은 민주적으로 생산·소비하기 어렵고, 그것을 개인들의 민주적 취향에 위임하면 자본이나 권력에 의한 상징조작의 희생물이 되어버리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무서운 것은, 정치적 민주화보다 문화적 민주화가 백배 어렵고, 스포츠스타의 승자독식보다 문화스타의 그것이 천배 지독하다는 사실이다.

김진석 / 인하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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