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환 / 한국외대·이탈리아어 © |
이탈리아어와 만난 지 20년을 벌써 넘겼음을 알게 된 어느 날, 다가가도 언제나 제 자리인 수평선처럼 내 삶에는 아무런 변화의 기미조차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남들처럼 평범하고 일반적인 길을 걸었어야 옳은 일일 것 같았다. 때론, 늦었지만 내가 걸어온 길과는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삶을 살아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어 보기도 했지만 그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지나있었다. 외국어 공부도 마약과 같은 것인지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했을 땐 막상 출구도, 용기도 없었다.
한국에서 한 외국어 전문가가 되고자 걸었던 이 길은 너무도 길고 힘겨웠으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내 가까운 주변 사람들을 장기간 괴롭혀온 과정이었던 것 같다. 분명 남들이 갖지 못한 비범한 능력 하나를 가지게 되는 것이기에 훨씬 안정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제공해 줄 것 같았는데 잔인하게도 사회는 너무도 장기간 그러한 삶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지난 날 내가 겪었던 고단한 삶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특수외국어의 영역에 대한 중요성 인식의 부재, 관련인재 활용시스템의 부재 같은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소수만이 지원하고, 또 그 가운데 소수만이 능력을 갖게 되는 특수외국어 전문가들에 대해서만큼은 정부 차원의 구체적 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이다. 그러한 인식과 시스템만 갖추어져 있었더라면 내가 그토록 많은 세월을 낭비하지 않았어도 되었고 이미 학교를 떠났어도 좋을 터이다.
지금도 나는 이탈리아어를 전공하는 후학들의 첫 기대와 이내 찾아오게 되는 고민이 다름 아닌 내가 해왔던 그것과 동일한 것임을 매번 확인한다. ‘이탈리아어와 진로’의 상관관계는 분명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배우는 사람에게도 전제가 되는 중요한 이유임에 틀림이 없는데 딱히 해답을 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대학이 직업을 얻기 위한 전초기지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과 괴리된 상아탑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특수외국어의 영역은 실제로 어느 나라에서나 반드시 전문인을 필요로 하는 실용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대학이 직업을 얻기 위한 진정한 전초기지라면 좋겠다.
오늘도 한 때의 내 모습처럼 눈에 확 뜨일 것 같지 않은 학생이 ‘이탈리아어와 진로’의 문제로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이탈리아어에 흥미가 있어 유학도 가고 제대로 공부 해보고 싶단다. 용기가 대견스럽기는 하나 미래가 걱정스러워 실제로 도움이 될 조언은 해주질 못했다. 그 기나긴 세월의 고통을 알기에 선뜻 내가 걸어온 길을 한번 걸어보라고 적극 권할 용기가 감히 생기질 않았다. 출구가 없는 긴 방은 생각만 하여도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