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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수량적 세계관의 포로
문화비평_수량적 세계관의 포로
  • 김덕영 한국디지털대
  • 승인 2006.03.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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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멘탈리티를 드러내는 말로 연고주의, 파벌주의, 인간적인 것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못지않게 주도하는 게 ‘量的 세계관’이다.

물론 오늘날처럼 복잡한 사회에서 수치와 통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문제는 모든 걸 양적 대소관계, 과다관계, 서열관계, 상하관계로 판단하려는 멘탈리티다. 심지어 종교세계와 미적 감수성 판단에서도 그렇다. 교회가 얼마나 큰가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가 하면, 누구의 성형수술이 더 아름다운가를 따진다.

양적 세계관은 다양한 현상의 질적으로, 내용적으로 복잡한 구조나 관계를 단순화시킨다. 양적 세계관은 인식의 고리를 짧게 만들어버림으로써 합리적 관찰과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또 절차에 대해 하등의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합리성과 다양성을 말살시킨다.

이러한 양적 세계관은 일등주의로 연결된다. 모든 것을 양적관계로 환원시켜버리면, 단순비교를 하게 되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이들보다 앞서고자 하는 사회심리학적 욕구가 생겨난다. 결국 모든 것에서 1등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힌다. 한국인들은 언제나 세계 最高, 最大, 最多 또는 最古를 강조한다. 아니면 아시아에서 그렇다고 하거나 단군 이래로 그렇다고 한다. 그래도 안되면 해방 이후 그렇다거나 최근 몇 년간 그렇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얻는 건 밑도 끝도 없는 쇼비니즘적 자아만족밖에 없다. 그사이 사회적 합리성과 다양성은 아예 형성될 가능성도 없다.

그렇다면 양적 세계관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1차적으로 근대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중심의 근대화를 주도해온 한국은 양적 가시화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하려 했다. 경제성장률, 수출실적, 일인당 국민소득과 같은 것이 그 예다. 게다가 경제적 근대화의 성과를 긍정적인 것은 가급적 크게, 부정적인 것은 가급적 작게 계량화했다. 이처럼 양적으로 가시화된 경제발전의 결과는 국가주도적, 경제중심적, 그리고 고도로 규율화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화에 대한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었다.

이런 양적 세계관은 점차로 전사회적인 현상이 됐다. 가령 한국 교회는 양적 성장에 치중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세속에 대한 피안의 세계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했다. 우린 심심찮게 전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는 한국에 있는 무슨 교회니 하는 말을 듣는다. 대학도 다르지 않다. 한국인들은 하버드가 세계 최고 명문대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옥스퍼드 또는 케임브리지가 영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서울대가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라는 엄연한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아무도 없다. 나아가 한국인들은 한국 대학과 전세계 대학을 서열관계로 배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벨상을 지상과제로 보는 것 또한 마찬가지 맥락이다.

다시 정치로 돌아가 보자. 참여와 개혁을 기치로 내건 노무현 정권은 출범한지 불과 몇 달 만에 갑자기 2만달러 시대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자 모든 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과정이 되고 말았다. 또 모두가 앞다퉈 방안을 제시했다. 가령 교육부는 청와대에 보고한 ‘주요 업무계획’에서 2만달러 시대 도약을 위한 인적자원의 배출을 가장 중요한 중점과제의 하나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미 40년 이상 양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국민들은 참여니 개혁이니 하는 것들에 실감을 못한다. 좋은 말이지만 공허하다. 김영삼 정권이 내세운 세계화는 1만 달러짜리라 하면서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참여와 개혁은 2만 달러짜리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노무현은 정녕 박정희의 적자다. 이제 2년 후에는 그의 다음 적자가 나타나 3만달러 시대를 내세울 것이다.

양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사회에 인간은 없다. 한국인들은 장차 도래할지 모를 2만 달러 시대를 향유하게 될 주체가 아니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인적 자원이 돼야 하고, 기술 개발과 혁신에 동원돼야 하며, 훈육되고 규율화되며 자아를 희생하는 객체에 불과하다. 그리고 2만 달러 시대에 도달하면 곧 3만 달러 시대를 위해 동원될 것이다.

김덕영 / 한국디지털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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