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2:05 (일)
학이사: 황우석 사태로 되돌아본 생명윤리
학이사: 황우석 사태로 되돌아본 생명윤리
  • 구인회 가톨릭대
  • 승인 2006.03.0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인회/가톨릭대·생명윤리 ©
지난 몇 개월 동안 생명윤리가 사회적 이슈였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에게든 생명윤리라는 학문이 있다는 사실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비교적 새로운 응용철학의 한 분야인 생명윤리는 고전적 의미의 정통철학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까지 철학계에서 제대로 비중을 두지 않았다. 또한 정작 생명윤리와 밀접히 관련을 맺고 있는 의생명과학계에서도 철학자가 왜 남의 고유분야에 들어와 참견하는가하는 식의 냉랭한 의혹의 눈초리를 던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도 생명윤리가 첨단생명과학에 대해 우호적이라기보다 우려와 비판적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하여튼 이번 사태로 인해 소외받던 생명윤리가 널리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그것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연이은 세계 최초의 혹은 최고의 수식어를 붙여 보도되던 센세이셔널한 복제연구 성과에 대해 감히 비판과 제동을 거는 목소리를 그 누가 귀담아 들어주었으며, 공감을 표했던가? 또 언론은 지면 할애에 얼마나 인색했으며, 거의 신격화되었던 국민영웅의 연구방향에 대해 회의와 성찰을 촉구하는 글이 혹여 게재되더라도 얼마나 공허한 독백으로 끝나기 일쑤였던가?

황우석 스캔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초기에는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눈치 보며 침묵하던 지성과 시민 단체, 여성계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고, 급기야 매일 새로운 필진들에 의해 현안 문제의 정곡을 찌르는 칼럼과 특집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처음부터 이러한 용기가 작용했더라면,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을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옳지 않은 일에 대해 대다수가 옳다고 주장할 때, 대세를 따라가는 일은 물론, 무관심하거나 침묵하는 일도 또한 용기 없는 비겁한 행동이며,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홀연히 나서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야 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닌가.

학부에서 필자의 수업은 시험과 과제에 쫒기는 의대생들에게는 어쩌면 과제로부터 해방과 휴식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주로 현안 생명윤리 문제들에 대해 자유로운 발표와 토론으로 이어지는 수업은 토론을 통해 문제점들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윤리적 문제와 관련된 구체적 임상 케이스에 대해 분석도 해보고, 실제로 환자를 마주 대하고 상담해야 하는 경우를 설정해서 결정을 돕는 의사로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실제로 생명윤리 심의를 하다보면, 생명윤리 교육이 누구보다도 필요한 분들은 현재 활발히 연구 활동 중에 있는 중견 학자들임을 절감하게 된다. 그들은 대학시절에 연구윤리에 전혀 접해보지 못한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맡고 있는 생명윤리학과 대학원생들은 의료계에 종사하는 분이거나 사제나 수도자들이다. 이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는 점에서 학생들의 취업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다행일 수도 있겠으나,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가르치는 선생의 보람이라면,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학과라서 학생 확보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생명윤리법 제정 후 이제 각 연구기관에 생명윤리위원회가 구성되고 있지만, 생명윤리 전공자는 전무하다시피하며, 생명윤리에 대한 전문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필요한 때임도 불구하고 전문가가 희귀한 현실이 안타깝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