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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와 아류 할리우드의 싸움이 되지 않으려면
할리우드와 아류 할리우드의 싸움이 되지 않으려면
  • 김진석 인하대
  • 승인 2006.02.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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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교수의 문화비평

▲17일 '한미 FTA 저지 농민투쟁 선포대회'에 참가한 영화배우 최민식씨가 전국농민회연맹 문경식 의장과 함께 앉아있다. © 프레시안
결국 쌀과 영화가 만났다. 무역자유화 속에서 고통을 겪는 농민들이 영화인들과 함께 항의시위를 벌이다니! 미국에 속수무책으로 혹은 섣불리 시장을 내줄 필요는 전혀 없다는 점에서 나는 영화인들의 항의에 동의한다. 그러나 문화적 차원에서 이 문제는 좀 더 복잡한 국면들의 조합으로 구성돼 있다. 예를 들면 심정적으로 스크린쿼터 유지에 찬성하면서도 현재 영화계의 시스템에도 이의를 제기하는 소리들도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쿼터축소에 반대하는 사람들 비율이 상당히 높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쿼터개방이 한국영화발전에 해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나는 영화시장이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는 않지만,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영화에 대해서도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나는 해석한다.

미국의 요구에 반대하는 한국영화계는 불행하게도 많은 점에서 할리우드 방식을 치명적으로 모방한다. 5백, 1천만 등 관객 숫자놀이에 열광하는 수준 낮은 언론과 그것을 부채질하는 영화계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한편으로는 이들 소위 국민영화,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관객은 없는 국제영화제 수상 영화들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한국영화에 대한 비판도 부족하다. 스타들의 높은 몸값에 비교해 스탭들이 열악한 환경에 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개혁을 실행하지 않은 채 스크린쿼터 축소에 무조건 반대하자고 말한다면, 자칫 현재 한국 영화를 지배하는 기득권에만 봉사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쿼터축소반대 운동은 또 문화의 산업적 측면을 부각시켰는데, 여기서도 특이한 점이 있다. 지금 스크린쿼터축소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문화산업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성공적인 문화산업인 영화가 미국 영화의 공격에 의해 잠식될 위험에 반대한다. 특히 영화 유통이 다른 문화영역과 달리 자본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쿼터축소에 반대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부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전제하는 경향을 가진다. 더 나아가면 무역전쟁이 횡행하는 국제적 현실에서 잘 나가는 문화산업일수록 국가의 지원과 후견을 받아야한다. 이전에 좌파들이 문화의 산업적 성격 자체를 부정하는 경향을 보였다면, 현재 쿼터축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다수(아마도 좌파라고 할 수 있는)는 오히려 그 반대편 쪽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산업을 전제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그것을 관리하자는 것이니까. 다만 그 변화가 동반하는 복잡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여기에 쿼터 유지를 주장하면서 ‘문화주권’에 대해 말하거나 문화에는 ‘민족의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말하는 이야기의 애매함이 있다. 한국영화가 현재 한국문화의 특수성을 대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의 문화산업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민족의 영혼’과 ‘주권’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건 지나친 민족(국가)주의가 아닐까. 산업으로서의 영화는 국제적 교역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문화활동이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동남아나 중국 등에 수출되면 한류의 개가라고 열광하면서, 스크린쿼터 문제는 ‘밥그릇’ 문제가 아니고 오로지 문화의 문제라거나 혹은 문화는 산업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도 솔직하지 않다. 따라서 과도한 국가주의에 반대한다면, 국민이나 민족을 볼모 삼아 문화를 보호하려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영화가 현재 다른 문화영역보다 우월한 자리에 있는 것도 그것이 대중문화적이고 문화산업적 친화성을 함께 가지기 때문이지, 다른 것보다 질적으로 우수해서가 아니다. 이 친화성 덕택으로 영화는 힘을 얻었지만 동시에 문화산업 차원에서 다른 문화영역의 희생을 요구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좀 더 문화적 책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솔직하게 그것이 문화산업임을 인정하고 보호하자. 그리고 맹목적으로 국민을 인질 삼아 거대영화자본과 스타시스템에 봉사하는 대신, 문화적·미학적 차원에서 다양성과 질적 참신성을 확보하게 하자. 스타들의 1인시위에만 의존하지 말고 먼저 시스템의 개혁을 실행하게 하자. 억대의 광고료를 받으며 전면 아파트광고에서 너무 행복하게 미소 짓는 여배우들도 자신들의 反민중적이고 반문화적 미소를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김진석 / 인하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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