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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역사는 定罪가 아니다
교수논평: 역사는 定罪가 아니다
  • 신복룡 건국대
  • 승인 2005.12.06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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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친일논쟁을 보며

▲신복룡 건국대 교수, 정치사 ©

얼마 전에 입법 통과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장래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새 역사가 창조되는 듯한 기쁨보다는 뭔가가 명치를 누르는 듯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일제 침략과 친일 청산의 문제는 한국 현대사가 안고 있는 비극이며 해방 60년이 되도록 이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業障처럼 우리를 누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친일 문제를 청산한다는 문제는 언제인가는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역사의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제는 그 의지와 방법인데 그것이 처음부터 몇 가지 점에서 잘못되어 가고 있다.

첫째로, 이 문제는 깊이 고민하고 공부한 사람들이 할 일이지 공부가 부족한 정치인들이 나설 일이 아니었다. 이 문제에 정치인들이 깃발을 들었다는 것부터가 잘못되었고 그 동기도 순수하지 않았다.

이런 논리에 대하여, 학계에서 이를 청산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치권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대응 논리는 부분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기왕에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민간 단체의 활동이 활발한 터에 정부는 이 문제에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

이것은 당초부터 학계가 맡아야 할 일이었다. 학계가 이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다면 이는 예산이나 또는 어떤 존재구속성 때문이었지 학계의 게으름 때문은 아니었다. 따라서 학계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선에서 그칠 일이지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책정하고 6년이라는 세월까지 정하며 할 일은 아니었다.  

둘째로, 지금의 친일파 청산 운동은 글자 그대로 친일파를 찾아내어 단죄하자는 것이 아니라 친일파의 자식을 찾아내는 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누구의 아버지가 일본군 헌병 伍長이었고 누구의 아버지가 일본군 중위였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들의 아들이나 딸이 주목받는 정치인 아니었다면 그것이 이제 와서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그 당시 오장이나 중위가 한 두 명이 아니었는데 왜 그들만이 문제가 되어야 하는가? 이런 점에서 지금의 친일 논쟁은 정략적이다.

셋째로, 역사의 단죄란 모름지기 균형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지금의 친일 논쟁은 너무 비분강개해 있으며 中庸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진정한 의미는 화해와 용서이지 복수심을 키우는 도장이 아니다.

망국의 아픔과 현대사가 보여준 비극성이 너무도 절절하여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悽然한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국가마저 그러한 심정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망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위정자들의 논리에는 비분강개만 있고 방략이 없어 보인다.

넷째로 우리는 일제의 특수한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4년여의 지배가 아니라 사실상 반세기에 걸친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친일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망국 30년이 되는 1940년대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일제 시대에 일본 사람으로 태어나 조국의 의미가 그렇게 절박하지도 않았고, 기성 세대도 상당수는 독립에 대한 희망을 체념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입장에 대하 정확한 인식이 없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을 지탄하는 것은 '늦게 태어난 행운'을 남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결성되었고 그 활동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기왕에 활동을 시작하려면 분열보다는 보듬는 화해와 용서가 필요하다.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나라는 난마처럼 얽히고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진 지금, 우리가 가야 하고 바라보아야 할 것은 미래이지 족쇄처럼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사가 아니다.

한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한다면, 과연 돌멩이를 들고 떳떳이 나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미래를 보기 위해 과거가 있는 것이지 과거를 되씹기 위해 미래가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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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도 2005-12-07 13:27:46
신교수의 글은 친일청산을 비롯한 과거사정리에 대해 있어온 부정적인 견해와 마찬가지의 뻔한 글일 뿐이다.
나는 한가지 물어보고 싶다. 과거사정리이든 친일청산이든 왜 정치권에서 추진하면 정략적이고 불순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학계는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정략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은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아전인수식 의견일 뿐이다. 학계의 인사들은 무엇을 근거로 자신이 정략적이지 않고 불순하지도 않다고 이야기하는가?
정치와 무관한 글이 있을 수 있는가? 특히 현대사에 관련된 부분에서 그 어떤 글이 정치와 무관할 수 있단 말인가? 이미 사회가 현대사를 바라보는 가치적 관점이 극과 극으로 양분되어 있는 마당에 어떤글이 가치와 무관하게 순수할 수 있으며 정치와 무관하게 순수할 수 있단 말인가.
최근 사회를 한바탕 소란으로 이끈 강정구교수의 글은 그가 정치인이라서 불순하고 정략적인가? 그는 학작가 아니라는 말인가? 도대체 그러면 어떤 학자는 순수하고 객관적이란 말인가? 정치학자인 신교수는 순수하고 객관적인가? 정말 한심한 일이다.
과거사정리 위원회의 활동을 보고 이야기 하시라. 하기도 전에 정략적이니 불순하다는 둥의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성급한 예단을 하지 마시라. 오히려 신 교수의 그런 예단이 정략적이고 불순하게 보일 뿐이다. 과거사청산에 부정적인 딱지를 붙여서 발목을 잡을려고 하는거로 보이는데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프랑스와 다른 오랜 식민지 생활의 특수성으로 죄없는자가 어디 있겠느냐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이다. 신이 아닌 이상 죄없는자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이야기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신교수는 신의 나라에 가서 살면 되는것이다. 여기는 죄많은 인간의 땅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죄지은자를 단죄한다. 그러면 우리는 왜 죄지은자를 단죄하는가? 다 죄짓는 죄많은 백성인데 말이다. 도대체 신교수의 기준에는 어떤 것이 죄이고 어떤 것은 죄가 안되는지. 일제식민지시대에 저지른 반민족적인
친일행위에 대한 기준은 없다는 것인지. 만약에 없다면 신교수는 인간의 죄를 대속한 예수의 심정으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십자가라도 져야 하지 않겠는가. 식민지시대에 저질러진 수없는 잔인한 억압과 착취를 대신 사죄할 마음은 되어 있는가.
신교수의 글은 정략적이고 불순한 정치권의 의도보다 더 정치적이고 불순해 보인다. 본인이 의도와는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제발 학자라면 이런 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를 우습게 아는 사회치고 합리적이고 투명한 사회없다는걸 모르는가. 미래는 과거의 참회나 회개없이 가능하지 않다. 미래는 곧 과거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보기 위해 과거가 있다고 하신다. 미래가 보이면 과거는 필요없다는 것인데. 웃기지 마시라. 과거가 없으면 미래는 없는것이다. 지나간 길을 보면 이미 앞 날을 알 수 있는것이다. 지나간 길이 없는데 앞 날이 있을것처럼 말하지 마시라. 이 세상에 그런건 없으니까.

한마디 2005-12-07 10:22:25
신복룡교수님의 말씀 모두 일리가 있다.
현 정권의 정치성이 다분이 들어간
이번의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문제가 없지 않다.

그러나, 학계도 그러한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해방후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친일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체계적인 대응논리로 쌓아왔단 말인가.

그것은 사학자들인만 하더라도
일제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한
이병도가 그들의 후학에게
친일사관을 심어준것만 이와 같기 때문이다.

정부는 너의 일이나 똑바로 해라
그냥 돈없는 민간에나 맡기지
왜 나서냐!

이런 논리인데..

중용의 위험이 바로 어느 쪽에도
나서지 않으면서 안주로서
머무르는 그 무책임함과 방기에 있다.
(그것이 마치 대단한 학자들의 자세인것마냥)

이것은 독재정권시절에
많은 참여시인들이 붙잡혀 들어가는데 반해
또 다른 시인들은 정치성이 없는 본연의
순수한 시만 쓰겠다면서 빠졌겟지만..
그때 혜택이란 혜택은 다 받았던 것을 떠올려보더라도..

해방후에 언젠가는 해야되었고
그것을 제때 못한채 넘어가 하려니
말이 많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독립유공자들은 어렵게 살아가고
친일파후손들이 땅찾기하며 뻔뻔하게
행보하는 모습을 우리가 봐야 되니 말이다.

무엇이 역사이고 누가 진정한 학자인가

그리고 신복룡교수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일제시대때 친일안한 사람이 어디 있냐고

그것은 당시에 독립운동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왜 그들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는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친일하지 않을 수 없는
비굴한 시대에도 불구하고, 자기 목숨 보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이역만리 만주벌판에서
일본군과 싸우고 고문당했던 그 많은 조상님들을
후손으로 왜 연구하지 않는가

학자라는 따뜻한 옷을 입고 있으니
살얼음의 추위속에서도 겨우 여름옷 한벌로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겠는가

임시정부의 사람들이 배고파
거지처럼 돌아다니던 시절에 대해
왜 연구하지 않는가.

나는 어느쪽도 아니라는 무관심과
당시에는 안한 사람이 없었다는 변명으로
도망가려는 사람들이 지금도 너무 많다.

탄탄할 것 같던 그들을
넘어지게 해야된다.
그리고 코가 깨져야된다.
그랬을때 정신차린다.

그런 자기반성조차 없는
사람에게 돌팔매 못하는 우리
선량한 국민들이지만..

언젠가 코 깨진다고
경고라도 해야되기에..

역사는 정죄가 아닐 수 있겠지만..
최소한..반성의 경고라도 되어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