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30 (금)
프랑스철학과 정신분석
프랑스철학과 정신분석
  • 김재호
  • 승인 2022.04.22 1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철학과 정신분석』 신인섭 외 14인 지음 | 그린비 | 656쪽

현대 프랑스철학의 무의식을 분석해 본다면 그 안에는 프로이트라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 프랑스철학은 프로이트의 창조적 변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들뢰즈, 푸코,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베르그송, 사르트르와 같은 사상가들 중 정신분석을 경유하지 않은 이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신인섭 교수가 엮은 『프랑스철학과 정신분석』은 프랑스철학에 미친 정신분석의 지대한 영향을 집대성한 책으로, 무의식에 관한 프로이트의 통찰을 계승 및 비판하고자 했던 프랑스철학자들의 시도를 파노라마처럼 정리하고 있다. 정신분석과 현대 프랑스철학의 밀접한 관련성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국내 연구서가 부족한 현실에서 철학, 미학, 현상학, 문학을 아우르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프로이트라는 프레임으로 새로운 프랑스철학사를 써 내려갔다.

책 속으로

베르그송은 자신의 ‘지속’ 개념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항상 변화하면서 존재한다’라는 평범한 사실로부터 발견해 낸다. 확실히, 우리의 심리적 삶을 이루는 것으로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관한 한, ‘변화한다’와 ‘존재한다’는 서로 완전히 동의어인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변화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심리적 사태란 결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저 평범해 보일 뿐인 이 사실이 대체 무슨 대단한 비밀을 함축할 수 있는 것일까? 베르그송에 따르면, 변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에 정말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다. (51~52쪽)

사르트르는 ‘나의 존재’ 자체와 구분되지 않는, 매 순간 갱신되는 행위로서의 ‘나의 자유’가 바로 세계 속에서의 ‘나 자신에 대한 선택’이라고 보고, 이것이 우리를 정신분석학에서 내세우는 “무의식의 암초”를 피해 갈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내가 피로감에 굴복하여 산행을 포기했을 때 그 행위는 나의 과거에서 도출해 낸 어떤 무의식적인 콤플렉스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곤에 지쳐서 ‘나도 모르게’ 배낭을 벗어 던졌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행위로 예상되는 모든 연루 관계를 완전히 의식하고 있다. 나는 의식적인 선택을 한 것이고 그 의식적인 선택은 바로 나의 존재와 구별되지 않는 ‘시원적 선택’으로부터 해명될 수 있는데, 이 ‘시원적 선택’은 나의 의식과 동일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무의식과는 다른 것이다. (108~109쪽)

아이는 “자신의 출입구가 외부세계로 문을 조금 열고 있는 존재인데 거기서 그 자신은 전능의 십장이고 불가사의한 과업의 저자이다”. 따라서 말디네는 프로이트가 신화에 근거해 상상한 환상과는 전혀 다른 오이디푸스 해석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말하자면 그것은 ‘소아의 유치한 삶’과 혼동되지 않을 ‘유아의 실존적 삶’에 본질적인 ‘원초적 의미’가 관건이다. 엄밀히 말해 오이디푸스 트라이앵글은 세계로 열린 아이의 존재양식이자, 타자들과 이 아이 사이의 소통 형태가 된다. 정신분석학이 집중하는 “가족형 및 소아형 세계”는 아동 고유의 ‘세계로 열린 현전’을 전혀 고갈시킬 수 없는 것이다. (258쪽)

들뢰즈와 과타리에 따르면, 미개, 야만, 문명에는 저마다 오이디푸스가 존재하지만, 그것들 모두가 우리가 알고 있는 오이디푸스는 아니다. 즉 그것들 모두가 근친상간에 대한 욕망, 그 욕망의 좌절, 그 좌절을 야기하는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인정,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그것의 내면화, 아버지가 제시하는 법과 권위에 대한 복종 등으로 구성된 내밀한 가족 드라마로서의 오이디푸스는 아니다. 두 저자가 “오이디푸스에서 출발하여 모든 사회구성체를” 다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무의식에 대한 기만”인 오이디푸스가 문명에만 나타나면서도 스스로를 인간 무의식의 보편적 구조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377~378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