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9:40 (금)
“대학의 지속가능성, 디지털·글로벌·혁신 역량에 달렸다”
“대학의 지속가능성, 디지털·글로벌·혁신 역량에 달렸다”
  • 노정혜
  • 승인 2022.04.19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_대전환 시대의 대학 ③_노정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대학은 긴 안목으로 새길을 개척하는 연구의 기지역할
문제해결능력 갖추고 협업할 수 있는 고급인재도 육성

“시대가 변해도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고급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의 역할은 변하지 않는다. 
세계 최초의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은 학생이 중심이 된 학풍을 유지하며 90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은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지식전달에 머물러 있다. 또한 대 학졸업생의 전공과 직업의 불일치는 매우 크다.
학생을 위한 대학으로 바뀌기 위해선 교수들이 사회적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

지난 2년간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대학의 구성원들은 고등교육의 본질과 방식에 대한 거대한 도전을 본격적으로 경험하였다. 서둘러 마련한 온라인 강의방식에 적응하느라 교수와 학생 모두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온라인이 편해진 학생들은 캠퍼스로 돌아오는 것을 주저하게 되고, 교수들은 자신의 전공강의가 무크나 유튜브 등에서 제공되는 수준높은 영상강의들로 대체될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자신의 발전에 필요한 지식들을 가상공간에서 여러 방식으로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된 학생들은 이제 사회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오래된 화석같은 대학을 더이상 참아주지 않을 것이다. 오래된 커리큘럼과 강의방식, 학과별 수강제한, 사회와 유리된 교육, 학생들을 성의없이 대하는 교수들에 대한 불만은 더 본격적으로 제기될 것이다. 현재의 대학은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알파세대의 학생들에게 더이상 매력이 없는, 그저 친구들을 대면으로 만나는 장소 정도로만 취급될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의 도서관. 볼로냐대학은 3년마다 전략계획을 수립하며 최고의 연구와 교육, 사회기여를 위한 실행과제들을 수행하며 점검하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미래학자인 토마스 프레이는 지금과 같은 교육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2030년대 초에는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 예언했다.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수준높은 강의들을 공유하고, 직업을 수차례 바꾸는 것이 일상화되면 현재와 같은 대학 교육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예견이다. 학령인구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대학이 당면한 도전은 가히 글로벌 역대급일 수밖에 없다. 

교육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수능지원자는 대학입학정원보다 2만 명 적은 49만 명으로  2002년 출생자 수와 거의 비슷하다.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 등을 고려하면, 현재의 수능지원자 수는 19년 전의 출생자 수와 거의 일치할 것이다. 2021년 출생자 수는 26만 명이다. 따라서, 2040년 수능이 지금과 같이 치러진다면, 수능지원자는 26만 명 수준이 될 것이다. 20년도 안되는 기간에 수능지원자의 수가 거의 절반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귀한 몸이 된 학생들이, 더구나 디지털 세계를 자유롭게 활보하며 글로벌 입맛을 갖게 된 학생들이 자신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또 설사 선택을 하더라도 쉽게 떠나 버린다면, 대학은 과연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대학 밖 프로그램과 경쟁하는 시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기관은 대학과 교회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볼로냐대학은 900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대학으로서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이 대학은, 1088년 창립 때부터 현재까지 학생이 중심이 된 학풍을 유지하고 있다. 3년마다 전략계획을 수립하며 최고의 연구와 교육, 사회기여를 위한 실행과제들을 수행하며 점검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유럽의 고등교육을 표준화하여 학자와 학생들의 유동성을 높이고 고등교육의 질을 높이고자 추진하고 있는 볼로냐 프로세스와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이 모두 볼로냐대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대학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볼수 있다. 

시대가 변해도, 혁명적 대전환의 시대에도 사회가 대학에 바라는 역할과 가치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을 창출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고급인재를 배출하며, 인류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대학의 가치이자 사명이다. 이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이 세 가지 존재이유를 실질적으로 구현해 내는 대학만이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갖는다. 능동적으로 바뀌어가는 대학만이 학생과 사회의 인정과 선택을 받을 수 있다. 대학 졸업장을 각종 인증과정이 대체할 수 있고, 대학보다 훌륭한 온라인 교육프로그램이 즐비하게 제공되며, 메타버스 등 가상공간에서도 얼마든지 인간관계망을 구축할 수 있는 세상에서 대학은 어떻게 존재 이유와 가치를 구현해 낼 수 있을까? 

 

인간적 상호작용 교육이 대학의 사명

우리나라는 BK사업이 시작된 2000년 이후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정량적 연구실적 (SCI와  Impact factor)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면서, 교수들이 교육보다 연구실적관리에 더 힘을 쏟는 현상이 심화됐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 상대적으로 등한시되었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어려운 연구는 도외시됐다. 4단계 BK사업에서는 연구의 질적 수준과 대학원교육의 혁신을 도모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선진화를 꾀하고 있지만,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서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지식 전달에 머물러 있는 관성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수요자인 학생의 관점에서, 학생의 장래와 사회적 필요를 중심에 두고, 교육과정과 교수방법을 빠르게 바꾸어야만 한다. 

대전환의 시대에 사회가 대학에 요구하는 졸업생은 문제해결능력을 갖추고 협업할 수 있는 인재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미래교육보고서 (「New vision for education」 2015)에 따르면 불확실한 미래에 필요한 인재들은, 기반지식(읽고쓰기·수리·과학·정보통신·경제·시민사회문화에 대한 문해력)에 더해,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창의·소통·협업(4C)’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꼽고 있다. 기반지식은 거의 대부분 비대면 온라인교육으로도 익힐 수 있지만, 4C로 표현되는 능력들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교류하며,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길러지는 역량들이다. 

따라서, 앞으로 대학은 가상캠퍼스가 제공하기 어려운 인간적 상호작용을 최대한 살린 교육방식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캠퍼스를 두지 않고 전세계 7개 도시를 순회하며, 강의는 최소화하는 대신 학생들에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토론식 밀착교육을 수행하는 미네르바대학의 성공에서 교훈을 얻어, 대학의 학습관리체계를 진화시켜야 한다. 학생과 최대한 밀착하여 소통하는 온·오프라인 교육이 관건이다. 

 

전공·학과의 벽 넘는 개방적 학사과정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이루어지는 교육이 전통적인 전공과 학과의 벽을 넘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없다. 우리나라는 대학 졸업생의 전공과 직업의 불일치가 매우 큰 나라 중 하나이다. 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을 대학이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교육은 학생에게 전공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수강한 교과목에 의해 전공이 정해지는 방식으로 학사과정이 운영되어야 한다. 신입생 선발도 전공·학과의 벽을 터서 최대한 광역화하여야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을 길러내기 위해 대학은 고등학교 학력에 치중한 선발방식을 벗어나, 사회경험에 기반한 선발전형도 개발해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에 가지 않아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다시 대학에 돌아와 배우고 후배들에게 경험을 전수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넓혀야 한다. 또한 일반인의 재교육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정규학사과정과 별도로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들을 더 광범위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마이크로디그리 등 다양한 학력 인증 프로그램들은 대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더 키우며, 사회발전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혁신 이끌 리더십·거버넌스 필요

온라인 디지털 캠퍼스가 대체할 수 없는 대학의 중요한 기능은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다. 민간과 정부의 연구기관들이 많아지면서 대학의 연구는 더 많은 경쟁과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대학은 긴 안목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연구의 기지 역할을 한다. 이제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려면, 앞서가는 기술을 재현하고 따라가는 수준의 연구를 벗어나서, 우리가 처음 시도하는 주제의 연구를 해야 한다. 우리가 길을 열어가는 연구는 우리나라와 지역에 적용되는 특수한 주제이거나, 새로운 지식의 지평을 여는 연구, 또는 국제적·인류적 숙제를 풀어보려는 도전적 연구들을 모두 포함한다.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려면, 학부생이건 대학원생이건, 문제를 정의하고 답을 찾는 방법을 실습할 수 있는 연구과정이 필요하다. 연구를 통해 가르치는 맞춤형 교육이 문제해결능력을 키울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주제이건, 어떤 난이도의 문제이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얻는 과정이 곧 교육이 되고, 그 결과물이 연구실적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대학에서 일어나야 할 변화 중의 하나는 이러한 대학의 혁신을 이끌 리더십의 실행력을 키우는 일이다. 많은 대학의 총장과 보직자들은 옳다고 여기는 방향을 알더라도, 이를 적시에 추진할 수 있는 실행력을 갖기 어렵다. 각종 행정적 제약과 예산의 문제도 있지만, 그 이전에 기존의 체재를 유지하려는 학내의 관성적 반발을 넘어가기 어렵다. 그 이면에는 총장과 학장으로 선출되기 위해 과다한 정치적 노력과 포퓰리즘적 약속을 남발하게 되는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학생을 위한 대학, 교수들이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대학으로 질적인 변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격변의 시대에는, 교직원들을 힘있게 설득하고 이끌 수 있는 리더십과 거버넌스의 혁신도 시급히 필요하다. 그래야 대학이 산다. 

노정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 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