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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상실하는 전환기의 대학…‘득실’을 따져보자
기득권 상실하는 전환기의 대학…‘득실’을 따져보자
  • 손화철
  • 승인 2022.04.25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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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_대전환 시대의 대학 ④_손화철 한동대 교양학부 철학 담당 교수

코로나19·학령인구 감소·디지털 전환이라는 도전
대학사회 소수에게는 기회·성공, 대다수에겐 상실

“대전환 강요받는 대학, 대학 구성원과 교수들의 기득권 상실은 분명하다. 
따라서 객관적 평가로 가장 좋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 
첫째, 온라인 교육의 장단점을 분석해 어떤 조합이 가장 바람직한지 분석해야 한다. 
둘째, 외국인 학생 유입·평생교육 확대가 교육방식·교수의 역할을 어떻게 바꿀지 따져봐야 한다. 
셋째, 대학의 서열화를 극복 위해 학계 내 자정의 노력과 비자발적 기득권 포기가 필요하다.”

코로나 19와 함께 대학은 큰 전환기에 강제로 접어들었다. 오랫동안 중세식 교육에 익숙해 있던 대학은 이전부터 이미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가능해진 정보와 지식의 광범위한 공유는 그동안 교수가 가졌던 독점적 지위를 흔들었다. 긴 시간의 소통을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미디어와 그에 익숙한 학생들은 오래된 교육 시스템에 잘 적응하지 못한 지 한참 되었다. 

 

대전환을 강요받는 대학과 그 안의 구성원들은 기득권을 상실할 것이다. 그렇다면 득실을 따져 가장 좋은 대안을 찾아봐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소위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기술 혁신은 이런 흐름을 더욱 강화했을 뿐이다. 그 위기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이런저런 기득권을 방패로 버텨오던 대학과 교수들은 온라인 수업을 강제하는 코로나19 사태 앞에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자리에 몰려 있다. 코로나19가 극복된다 하더라도 이전의 교실을 찾을 수 없을 것이 자명한 지금, 다음 행보를 빨리 결정해야 한다. 

사실 이와 관련한 수많은 대안이 제출되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그 대안의 성과와 성취에 대해서만 논의가 집중되고 그것을 통해 없어지거나 무너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교육 방법론이나 대학의 편제를 논할 때, 이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대학과 교수가 무엇을 잃을 것인지에 대한 적나라한 분석이 없다. 대안론자들의 주장이 정책 결정자와 학교 당국에만 들리고 현장에서 힘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좀 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코로나19, 학령인구 감소, 디지털 전환 등으로 대전환을 강요받고 있는 한국 대학이 면한 도전을 나열하고 그 도전의 해결이 요구하는 희생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어차피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면, 미래를 도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냉정하게 득과 실을 계산하는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그 계산의 결말은 관련자 대부분에게 불리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관찰과 예측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은 소수의 몇몇에게는 큰 기회와 성공을 가져다줄지 모르지만 남은 대다수에게는 그다지 바람직한 미래를 선사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실시간 온라인 수업과 교실의 삭제

첫 번째 도전은 실시간 온라인 수업과 소통의 활성화이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Zoom과 WebEx 등으로 대표되는 쌍방향 온라인 수업의 가능성이 크게 확대됐다. 이전에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낮은 해상도와 인터넷 끊김도 이제는 넉넉히 감수하고 답답해하지 않게 되었고, 교수자나 수업자 모두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을 익혀서 편안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형편이 되는 사람만 현장에 나타나고 아픈 사람, 집이 먼 사람은 그냥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학회들도 담담하게 진행되고 있다. 학생 중에는 화상 앱을 통한 면담을 요청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화로 이야기해도 될 사소한 일, 만나는 게 더 나을 만한 중요한 대화가 모두 화상으로 대체된 셈이다. 

이제 없어지지 않을 이 가능성은 대학의 건물과 교실, 연구실 같은 하드웨어의 정당성을 묻는다. 몇 년 전부터 미국의 급진적인 온라인 대학 미네르바 스쿨이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그 때는 그들의 온라인 수업 매체보다는 토론식 수업이나 여러 나라를 옮겨다니며 경험을 쌓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진취성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들의 지향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교실, 강당, 운동장, 연구실, 도서관의 삭제다. 미네르바의 교육이 급진적인 것은 하드웨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존 대학의 고비용 구조를 비판하며 왜 건물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코로나 19를 지나고 보니 이 물음이 갑자기 우리를 때린다. 

물론 온라인 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도 많다. 미네르바가 엄청난 자원을 투자해 개발한 온라인 교육 시스템과 비교할 때, 코로나19 때문에 갑자기 사용해야 했던 회의용 프로그램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교실에서 함께 하는 수업이 가지는 일정한 긴장감을 온라인 상에서 구현하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학생들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플립 러닝, 문제해결식 토론과 온라인 교육을 병합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대개 교실에 있은 지 오래된 사람들이다. 혁신이 중요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온라인 수업을 부정하거나 긍정할 것이 아니다. 그 대신 지난 2년 동안 경험한 실시간 온라인 수업과 녹화 수업, 현장 수업, 그리고 그들을 병행하는 수업을 면밀히 비교 검토해야 한다. 그 차이와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조합이 가능하고 바람직한지 분석해야 한다. 어떤 과목과 수업 방식이 건물을 필요로 하고 온라인 수업을 통해 새로 얻은 바가 무엇인지 나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궁극적으로 대학 건물의 용도에 대한 미네르바의 물음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어쩌면 어떤 대학은 캠퍼스가 절반만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일부 교수들은 기존 방식의 교실 수업을 아예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부분의 대학은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소수의 ‘상류층’만 현장 수업을 하는 다소 서글픈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외국인 학생 유입과 평생교육 확대

한국 대학이 면한 또 다른 도전은 모두가 알고 걱정하는 문제이면서 이미 대학에게 무한 경쟁을 강요하고 있는 학령인구의 감소다. 지방 사립대 교수 입장에서는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상황이지만 호소할 기관도 대상도 없다. 20년 전 출산율이 낮았던 것을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열심히 경쟁에 이겨서 살아남으려 하지만, 문제는 경쟁에 늘 이길 보장도 없고 진 대학이 쉬 없어지지도 않아서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주 제시되는 대안은 외국인 학생을 유입하는 것과 평생교육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대학이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이는 기존에 우리가 알던 대학 교육의 성격을 바꾸는 결과가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선택은 단순히 신입생 선발 대상을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이외의 집단으로 확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교원 인사와 평가로부터 학사 운영, 수익 모델까지 완전히 새로운 체제를 갖추어야 하고, 교육부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대학들을 지원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은 고3 입학생 위주의 체제 위에 외국인과 평생교육 대상자들을 어정쩡하게 얹어서 가고 있지만, 차라리 빨리 체제를 전환하여 제대로 된 교육을 추구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외국인 학생이 입학한 후에 저임금 노동자로 사라지는 문제를 포함해서 대학이 감당하기 힘든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해서도 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이며 적극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어떤 대학이 기존의 체제에서 외국인 학생의 비중과 평생교육의 비중을 높인다면 교수의 역할과 업무, 교육방식도 바뀔 것이다. 한국어 실력이 대학 수준의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일 수도 있고, 학생이 평일 낮이 아닌 저녁과 주말에만 캠퍼스테 머무를 수도 있다.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대학도 많은데, 그 상황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로 받고 제도와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나아가,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립할 필요가 있다. 빠르게 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소양과 역량을 키우는 것이 대학에서의 4년만으로 그칠 수 없음을 인정한다면, 평생교육을 대학 교수의 중요한 역할로 삼고 거기에 맞는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는 대학교육을 고등교육이 아닌 더 긴 교육 과정의 일부로 보는 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력보다 학벌 우선하는 대학사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는 오늘의 문제도, 대학만의 문제도 아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겹쳐질 때 더욱 부정적인 시너지를 낼 심각한 도전이다. 대학의 서열화, 서울 중심의 경제, 빈부의 격차는 모두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대학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어야 한다.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이 아닌 대학의 이름을 중시하는 기득권 문화는 대학 진학률이 70%에 이른 지금에도 여전하다. 거대하게 형성되어 없어질 줄 모는 사교육 시장이 그 증거다. 실력보다 학벌을 우선하는 것은 그 자체로 4차 산업혁명을 방해할 것이고, 혁신의 열매를 가장 부당하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나누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개인의 선택이 모여 일어나는 대학의 서열화를 인위적으로 극복하기는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다양한 정책적 대안을 시도하는 것과 동시에 대학과 교수사회, 학계 안의 학벌주의를 타파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정작 정부와 기업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을 하며 실력과 학벌을 구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인사에서 학문적 수월성과 학교의 이름을 동일시하고 교수가 자기 대학의 학생을 무시하며, 출신 학교별로 학회가 분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거대 담론과 대책을 운운하기 전에 대학과 학계부터 자정의 노력을 기울이고, 기존의 자존심과 이익을 의식적으로 내려 놓아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서열화가 아닌 연구와 교육 중심 대학을 구분하거나 연구와 교육 중심 교수를 구분하여 재조직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인데 이 역시 누군가에게는 비자발적인 기득권 상실을 의미할 것이다.   

 

각자 유리한 대안 찾는 게 합리적

위기는 극복되어야 하고 외부의 변화에는 대처가 필요한데, 아무리 잘 해도 손해를 보는 상황이 있는 법이다. 이는 국가나 대학의 차원에서도 그러하지만 개인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은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받고 있고, 이는 곧 대학과 대학 구성원, 특히 교수들의 기득권 상실로 이어질 것이 거의 분명하다. 이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고 가린 채 새로운 교육 방법론과 체제로 미래 교육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닐 뿐 아니라 거짓말이다. 막연하게 학생의 기본 소양과 먼 미래를 운운하며 변화를 거부하고 지금의 체제를 고수하려 하는 것 역시 가식적일 뿐 아니라 다같이 망하는 길이다. 차라리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한 후에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모두 펼쳐놓고 각자 가장 유리한 대안을 찾아 현실적인 협상에 들어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손화철
한동대 교양학부 철학 담당 교수

벨기에 루벤대에서 기술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관심사는 포스트휴먼와 인공지능의 철학이다. 『미래와 만날 준비』(책숲, 2021), 『호모 파베르의 미래』(아카넷 2020), 『불평할 의무』(2016, 역서)를 비롯한 몇몇 저서, 공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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