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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대학
조용한 대학
  • 박혜영
  • 승인 2022.04.0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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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박혜영 논설위원 /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박혜영 논설위원

미국의 선구적 생태사상가인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침묵의 봄』에서 봄이 와도 새가 노래하지 않는 조용한 공포를 그렸다. 해충을 박멸하기 위해 살충제를 무차별 살포한 결과 벌레뿐 아니라 새들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찬란한 봄이 시작되었지만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세상은 공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비슷한 공포를 대학에서도 느낀다.

코로나19로 2년간 봉쇄되었던 대학이 마침내 새봄에 문을 열었다. 대면수업이 시작되고 학생들은 캠퍼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조용하긴 마찬가지다. 수업은 다시 열렸지만 강의실에 질문이 없긴 마찬가지다. 교수와 학생들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학문전승은 수업시간에만 일어난다. 대학의 사명인 진리탐구에 걸맞을 만한 세미나도, 콜로퀴엄도, 컨퍼런스도 없다. 대학의 침묵에 관한 한 적어도 코로나19 전후로 큰 차이가 없다.

한 때 대학이 사회개혁의 선봉에 섰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대학은 민주주의를 위해, 사회정의를 위해, 세계평화를 위해 기꺼이 입을 열었다. 캠퍼스는 항상 시끄럽고 혼란스러웠지만 누구도 소음에서 공포를 느끼진 않았다. 대학이 본연의 학문연구보다 현실정치에 과잉반응 한다는 비판도 이런 소음의 일부였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대학이 조용해졌다. 수업 외에 모든 학문의 방들이 닫히기 시작했다. 선후배간의 정치스터디는 취업동아리도 대체되었고, 교수들 간의 만남의 장이던 세미나나 강연회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교수들은 저마다 연구비를 위해 자기 연구에만 매진할 뿐 동료들의 학문적 관심사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학생들은 취업공부만 할 뿐 대학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렇게 대학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대학이 비단 우리의 현실에만 입을 다문 것은 아니다. 대학은 전 지구적 문제에도 침묵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의 마지노선인 지구 기온 1.5도 상승이 코앞에 닥쳤지만 대학의 고요함은 적막하기까지 하다. 남극의 빙붕에서 끊임없이 빙하가 떨어져 나오고, 북극곰의 생존위기는 진부할 정도로 반복되지만 대학은 조용하다.

가깝게는 한 달이나 지속된 러시아의 침략전쟁으로 전 세계 언론이 시끄럽지만 대학 언론은 조용하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느닷없는 이별과 죽음으로 내몰리지만 이를 염려하는 대자보 한 장 나오지 않는다.

물론 대학이 조용한 것은 사실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업적으로 바쁘고, 학생들은 취업준비로 바쁘다. 대학은 교육부의 각종 재정사업에 지원서 작성하랴, 결과보고서 제출하랴, 대학평가 준비하랴 항상 바쁘다. 학생들도 스펙 쌓으랴, 자격증 취득하랴, SWAT 분석하랴 항상 바쁘다. 학령인구 감소까지 더해져 전국의 대학들은 구조조정으로도 바쁘다. 그래서 이렇게 조용한 것이다.

이런 침묵이 두려운 것은 마치 어느 날 새들이 사라져버린 봄처럼, 대학정신도 지금 조용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까닭에서다. 『침묵의 공장』에서 강명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의 대학은 공부와 교육을 위한 곳이 아니다. 공부는 논문의 양산으로 대치되었고, 교육은 학점을 주고받는 과정에 불과하다. 초·중·고등학교가 붕괴한 것처럼 대학도 붕괴하고 있다.” 감히 틀린 진단이길 바래본다.  

박혜영 논설위원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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