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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바다에서 멀미 예방법
학이사: 바다에서 멀미 예방법
  • 김대철 부경대
  • 승인 2005.10.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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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철/부경대·지질해양

전공(해양지질학)상 매년 적어도 두어 차례는 배를 탄다. 내가 타는 배는 국내 유일의 대학소유 해양탐사선인 부경대학교 탐양호이다. 발바닥 밑의 땅속상황을 몰라 육상공사 중에도 가끔 사고가 나는데 하물며 바닷물로 덮인 땅속의 일은 더욱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해저표면이 아니고 해저퇴적층이나 기반암의 상황을 밝히는 데는 오히려 바닷물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배를 이용해서 이동해가면서 탐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학생들과 남해에서 해상탐사 중이었다. 고교동기가 전화를 했다.

“어데냐?”
“응 남해야. 무슨 일인데?”
“내일 모레 부산동문회 있잖아 우리 집에서 하니 참석하라고 (참고로 이 친구는 식당경영). 그런데 남해라니 남해 어덴데?” (이 친구는 내가 남해도에 차 몰고 돌아다니는 걸로 착각)
“남해도가 아니고 남해 바다야. 지금 학생들과 실습중이지.”
“야 정말 좋겠다. 부럽다.”
“야 그게 아니고 나는 멀미가 나서 죽겠다.”

늘상 이런 식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바다에 있다면 일단 부러워한다. 뭐 낭만이 있다나. 하지만 이번처럼 4박5일 거의 내내 강풍과 높은 파도에 시달리고 나면 이 나이에 내가 뭐하나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나도 다른 세련된 해양학자들처럼 기존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이나 할까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학생들 실습이니 해양관측기기의 원리, 사용법, 자료해석 등을 강의해야 하는데 지도교수가 헤매고 있으니 진행이 잘 안 된다. 바다에서 멀미 경험하신 분들은 이해하겠지만 멀미가 나면 만사가 귀찮고 드러눕고만 싶다. 하지만 강의는 해야지.

해양탐사선에 약방의 감초처럼 꼭 있어야 되는 장비중의 하나가 해저지층탐사기(subbottom profiler)이다. 보통 주파수 5-12 KHz의 고주파를 쓰는데 이 정도 주파수 대역에서는 점토퇴적층 약 100 m 가까이 투과를 할 수 있어서 연안 퇴적층 연구에 아주 유용한 장비이다. 남해를 탐사하다보면 수심 60~70m 부근에 점토층이 모래, 자갈층으로 바뀌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이 마지막 빙하기 퇴적물의 흔적이다. 빙하기하면 아주 오래전인 것 같지만 이정도 수심이면 약 일만 년 전 일이니 석기시대 우리 조상들이 이 지역까지 나와서 조개도 잡고 물놀이도 했을까하는 생각을 하다 멀미를 깜빡 까먹었다.

“얘들아 요기 퇴적층에 움푹 파진 곳은 빙하기 해수면이 낮았을 때 섬진강 흔적이란다. 강이 만든 수로 위에 새로운 퇴적물로 덮여서 이런 모습이 나타나지.”

다시 학생들에게 지구환경 강의를 한다. 만약 온실효과에 의해 육상빙하가 다 녹으면 해수면이 최대 70 m까지 상승할 수 있으며 현재는 약 1mm/y이지만 상승속도가 가속화되는 상황이라고도 설명을 한다. 따라서 저지대에 땅을 사지 말라는 부동산 강의도 곁들인다.

남해를 누비고 다니면서 가끔 꿈을 꾼다. 우리가 가진 해양탐사장비로 우연히 거북선, 아니 임진왜란때 총포라도 발견한다면 (타이타닉처럼) 멀미는 완전히 사라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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