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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라면 플라톤의 ‘국가’를 알아야 하는 까닭
대선주자라면 플라톤의 ‘국가’를 알아야 하는 까닭
  • 서영식
  • 승인 2022.01.11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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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로 읽는 리더의 정신_서영식 충남대 교수

세상의 모든 고전은 전통적인 사고와 거리가 먼 낯선 생각으로 채워져 있으며, 아무도 발을 들여 놓지 않은 거친 땅을 개척해 새로운 길을 열었다. 또한 모든 고전에는 독자에게 현실 문제와 연관해서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제공하는 공통점이 있다.

플라톤의 『국가』는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과 정신을 제시한 고전이다. 사진=위키피디아

플라톤(B.C 428/7~348/7)의 『국가』는 서구 지성사에서도 손꼽히는 고전 중의 고전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미 수십 세기 전에 등장했던 저술을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한국인이 다시 꺼내 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에는 ‘공공 리더십’의 의미와 역할이 현대인의 시각에서도 꽤 흥미로운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 리더십’은 20대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2022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무엇보다 절실히 요청되는 동시에 가장 희귀한 가치개념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철인왕’은 최고 국정 책임자로서 통치의 밑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 지도자로서 현실 문제에 대응하는 판단원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왜 리더에게는 실천궁행과 헌신이 중요한가 등이 설득력 있게 논구하고 있다.

 

사회지도층, 경제 이익 추구 멀리해야

우선 플라톤은 『국가』에서 한 나라의 타락과 분열의 근본 원인을 시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지나친 부와 빈곤 현상에서 찾았다. 개인의 과도한 부는 “사치와 게으름 및 변혁을 초래”하지만, 지나친 빈곤은 “노예근성과 기량의 떨어뜨림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부와 빈곤이 공존하는 나라는 더 이상 ‘한 나라’가 아니라, 구성원 상호 간의 불신과 경제적 이익 추구를 위한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따라서 언제라도 붕괴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나라’에 다름 아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통치자 집단은 이윤 추구를 위한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심지어 사유재산과도 거리를 둠으로써 일반 시민들이 빈곤 속에서 불신과 박탈감을 느끼는 상황을 방지해야 한다. 국정 운영그룹이 정경분리 원칙을 준수함으로써 경제정의 실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나라를 단결시켜야 한다는 고언이다. 고위공직자 임명과정에서 불투명한 재산 형성이 가장 큰 시빗거리가 되어 국민의 공분을 사기 일쑤인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지도층이 반드시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플라톤은 이른바 ‘영혼 삼분설’을 근거로 인간을 태생적으로 세 가지 계층으로 구분했다. 또한 이 세 계층은 각각에 적합한 업무에 종사해야 하며 이것을 존중하는 마음 자세(절제)가 『국가』가 지향하는 이상 국가, 즉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의 토대임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계층별 분업론’에서 현대인이 주목할 만한 내용은, 플라톤이 개인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새롭게 부여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사실이다. 출신성분이 좋더라도 자질이 부족할 경우에는 본래 예정된 직업과 다른 일에 종사하도록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직업의 단순한 세습은 부정되는데, 이 원칙을 무시할 경우에는 아무리 이상 국가라도 쇠퇴와 몰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플라톤에 따르면 여자도 통치에 필요한 수련과 교육과정을 거쳐 능력을 갖추면 남자와 마찬가지로 통치 그룹에 합류할 수 있으며, 이 원칙은 여타의 모든 직업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남녀 간의 역할 평등 주장이 파격적인 이유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남녀평등을 포함한 인간존엄성 관념이 실질적으로 정착된 현대사회와는 달리, 당시 대부분의 그리스 도시국가(polis)는 물론이거니와 정치적으로 직접민주주의가 자리 잡힌 아테네에서도 여성의 지위는 상상 이하로 낮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할 평등에 관한 플라톤의 사유는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난 세대 이후 점점 더 외국 출신 직업인과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는 현실 속에서, 이제는 우리도 좀 더 개방된 자세로 문화적 차원의 국가공동체 형성에 노력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일체의 생물학적 편견 없이 개인의 노력과 능력이 존중되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군인(수호자) 계층 이외에도, 철인왕 역시 전사로서의 능력을 충분히 갖추어야 한다. 최고 수준의 ’전쟁 수행 능력’은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과 더불어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자격이라는 것이다. 즉 전쟁에 관한 지식과 능력은 철학적 자질과 더불어 국가 운영의 필수조건인바, 철인왕 후보들은 양성과정에서 최종적으로 5년간 전문적인 수준의 철학교육(변증술적 논변)을 이수한 후에, 반드시 오랜 기간 전쟁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나아가 전투 현장에서 지휘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최상위 국정 운영그룹이 전문적인 수준의 군사지도자 역량을 반드시 갖출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질병이나 죽음과 마찬가지로 삶의 여정에서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conditio humana)이었음을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

특히 우리의 경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기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러·일 4대 강국이 사활을 건 군사적 패권 경쟁에 돌입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이후 70여 년간 이어진 불안한 평화 속에서 국가안보와 뛰어난 군사리더 양성의 중요성을 점차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쟁에 관한 플라톤의 사유를 접하며 되돌아봐야 한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구성원 대부분의 동의하에 제정된 훌륭한 법률체계가 통치자 그룹에 의해 안정적으로 시행되고 정착된 예에 해당한다. 아무리 완벽한 인적 자원으로 구성된 나라가 수립되더라도, 통치자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 합리적인 전통과 이성에 기초한 실정법은 현실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철인왕은 한 번 제정된 법률은 결정적인 문제가 없는 한 유지되도록 관리해야 하며, 법을 고의로 어기거나 법의 정신에 반하는 행위를 한 자에 대해서는 외적의 침입이나 내란의 발생과 동일한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나아가 플라톤은 법률 제정의 궁극목표가 시민의 생각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덕과 연결함으로써 그들에게 내면의 성장이 가능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상 국가 안에서 시민의 바람직하고 덕스러운 행위는 기본적으로 법에 대한 신뢰와 복종을 전제로 한다. 동일한 맥락에서 인간의 윤리적 타락은 일차적으로 법에 대한 존중 즉 준법정신의 상실과 함께 발생하게 된다.

 

루스벨트 대통령 등 성공한 변혁적 리더들은 자신이 책임진 조직이나 공동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이상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녔으면서도,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는 흔히 거래적 리더십으로 폄훼되는 수단과 방법을 자주 사용했다. 사진=AP

플라톤 고전에서 리더로서의 정신을 찾다

그렇다면 철인왕 담론은 현대인의 시각에서 볼 때 완벽한 국가 운영 프로젝트인가? 아쉽지만 그렇지는 않다. 20세기 후반에 소개된 한 가지 흥미로운 리더십 담론을 매개로 철인왕 프로젝트의 성격을 음미해 보자.

만약 철인왕이 실제로 존재하며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등장했다고 가정하면, 분명 그는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조직의 장기 목표 즉 공유비전을 제시한 ‘변혁적 리더’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철인왕이 진정으로 성공한 리더로 기록되기를 바란다면, 그는 구성원의 인간적인 욕망을 세밀히 파악하면서 그들의 열정과 성과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거나 필요하면 현실과도 적절히 타협할 줄 아는 ‘거래적 리더’(transactional leader)의 면모를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루스벨트(F.D. Roosevelt 1882-1945)를 포함해서 실제 역사 속에 등장했던 다수의 성공한 변혁적 리더는 자신이 책임진 조직이나 공동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이상을 품고 또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녔으면서도,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는 흔히 거래적 리더십으로 폄훼되는 수단과 방법을 자주 사용했다.

어쨌든 『국가』는 서구 문명사상 최초의 ‘국가 지혜(sophia) 경영 컨설팅 보고서’다. 현대 리더십 용어를 차용해 표현하면, 이 작품은 ‘수기(修己)’(self-leadership)와 ‘봉사’(servant leadership)의 자세를 확립하고, ‘정당한 권위’(charisma leadership)를 바탕으로 시민 각자가 자신의 ‘소질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이끄는 능력’(empowering leadership)을 갖춘 ‘전인적 지도자’(authentic leader) 양성에 관한 인문학 차원의 ‘야전교범’(field manual)인 것이다.

누구나 쉽게 리더를 자임하면서도 정작 ‘리더에게 요구되는 정신’(leader spirit)을 소유하고 실천하는 인물은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다. ‘철인왕 담론 제대로 읽기’는 리더십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우고 우리의 가슴 속에 희망의 재생을 견인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다.

 

서영식 충남대 교수·리더십철학

스위스 루체른대에서 서양고전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충남대 리더스피릿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또한 한국동서철학회 편집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공공성과 리더스피릿』(공저, 2021), 『고전의 창으로 본 리더스피릿』(공저, 2021), 『플라톤철학의 실천이성담론』(2017), 『청춘의 철학』(2016) 등 1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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