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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오른손
죽음과 오른손
  • 김재호
  • 승인 2021.12.2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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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에르츠 지음 | 박정호 옮김 | 문학동네 | 184쪽

이 책은 프랑스 사회학자 로베르 에르츠(1881~1915)의 주요 논문 「죽음과 이중 장례식」(1907. 원제는 ‘죽음의 집합표상 연구를 위한 기고’)과 「오른손의 우월성: 종교적 양극성에 관한 연구」(1909)를 묶은 것이다. 이 두 논문은 1960년 『죽음과 오른손』이라는 제목으로 영어판이 출간되었다. 에르츠는 현대 사회학의 초석을 놓은 뒤르켐학파의 젊고 뛰어난 연구자였다. 에밀 뒤르켐과 『증여론』의 마르셀 모스가 아끼던 학자였던 에르츠는 1차대전 시기에 만 33세의 나이로 전사했고, 그가 남긴 글들은 스승인 모스가 정리해 책으로 펴냈다.

 

『죽음과 오른손』 영어판 서문을 쓴 영국의 저명한 인류학자 에드워드 에번스프리처드는 에르츠의 저술이 “프랑스에서 두 세기 동안 축적되어왔던 사회학적 사유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극찬했다. 또한 모스는 에르츠를 “인간 정신의 어둡고 사악한 측면”을 강조한 학자라고 평했다.

1881년생인 에르츠는 1900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했고, 1904년 철학 교사자격시험을 통과한 뒤 뒤르켐의 사회학 연구팀에 합류했다. 이 무렵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방대한 양의 민족지 자료를 조사할 기회를 얻었고 보르네오의 다약족과 멜라네시아의 마오리족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1906년에는 고등연구원에 들어가 모스의 강의를 들었고, 뒤르켐이 창간한 『사회학 연보』의 종교사회학 분야 편집진으로 참여했다. 종교는 뒤르켐학파의 가장 중요한 사회학 연구 대상이었다. 이때부터 에르츠는 죽음과 장례식, 오른쪽과 왼쪽의 종교적 양극성, 죄와 속죄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07년 「죽음과 이중 장례식」을 『사회학 연보』에 발표했고, 1909년에는 신체 인류학의 선구적 업적인 「오른손의 우월성」을 『철학 논집』에 발표했다. 이 두 논문은 젊은 사회학자 에르츠가 품었던 학문적 주제와 방향을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는 글들이다.

죽음과 오른손은 사회학의 주된 연구 대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에르츠는 사회학의 주변적 사유 대상으로 여겨지는 이 죽음과 오른손을 통해 사회적 삶의 심층을 파고들어 이원적 분류체계에 기초한 집합적 의식과 도덕적 권위의 원천을 탐구한다.

죽음과 장례식

인간은 장례를 치르는 유일한 동물이다. 고인의 시신은 동물의 사체처럼 취급되지 않는다. 시신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돌보고 올바르게 매장해야 한다. 이는 위생적 조치일 뿐 아니라 도덕적 의무이기도 하다.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도 일정한 의무를 부과한다. 일정 기간 슬픔을 표현하는 애도 기간을 가져야 하며, 이때 평소와는 다른 색의 옷으로 갈아입고 생활방식도 바꿔야 한다. 또한 생명의 소멸을 두고 인간은 특별한 관념을 만들어낸다. 영혼이 저세상(타계)으로 떠나 조상들을 만난다는 식이다. 이는 어느 인간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장례를 치르면서 죽음의 가혹한 현실은 집단이 꿈꾸는 정교한 상상의 세계가 된다. 이로부터 부활, 윤회, 환생 등의 관념도 생겨난다. 이렇듯 죽음은 “믿음, 정서, 행위의 복합체”(9쪽), 집합표상의 대상이다. 이 집합표상은 당연히 종교의 탄생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에르츠는 죽음을 집합표상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죽음의 인류학적 연구에 기본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장례식, 죽은 자에 대한 두려움, 시체의 불순함, 애도 등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현상을 ‘이중 장례식’이라는 흥미로운 분석틀로 설명한다.

에르츠의 분석 모델은 주로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에 사는 다약족의 장례 풍습이다. 다약족은 사망 직후 시신을 최종적으로 매장하지 않는다. 이들은 시신을 임시로 특별한 장소에 보관하거나 매장한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유해를 수습해 최종 매장지로 옮긴다. 이처럼 두 차례 매장 사이에 시신은 ‘살아 있지는 않지만 아직 최종적으로 죽지도 않은’ 상태에 놓인다. 이 시기를 ‘중간 단계 기간’이라 부른다. 이 기간은 보통 2년이지만 10년까지 걸리기도 한다.
에르츠는 이 이중 장례의 원인을 시체의 부패와 결부시킨다. 중간 단계 기간은 “시체가 순전히 뼈만 남은 상태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시간”(14쪽)이라는 것이다. 시체의 살이 사라지고 마른 뼈만 남으면 중간 단계는 완료된다. 썩지 않는 뼈는 중간 단계를 완전히 통과한 고인을 상징한다. 이후 이루어지는 최종 매장, 최종 장례의 목적은 첫째, 고인의 유해를 최종 매장하고, 둘째, 영혼을 타계로 인도하며, 셋째, 산 자들을 애도의 의무에서 풀어주는 것이다.

중간 단계를 거쳐 남는 하얀 뼈는 죽은 자가 세상에 남긴 불멸의 요소이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사회의 영속성을 상징적으로 복원한다. 죽은 자의 뼈가 사회의 불멸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소멸하는 살은 개인의 것이지만 썩지 않는 뼈는 사회에 귀속된다. 죽음의 집합표상은 썩지 않는 뼈를 영속성의 상징으로 만들고 그것에 두번째 생명(죽은 자들의 삶)을 부여함으로써 죽음을 내쫓는다. 이중 매장과 중간 단계 기간이라는 복잡한 장례 과정을 통해 자연적 사실인 죽음은 문화적 대상으로 재해석된다. 이때 시체의 부패와 영혼의 운명, 산 자들의 애도가 긴밀하게 맞물리며 사회는 공동체의 결속을 공고히 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장례 절차는 생략되고 간소화된다. “애도는 산 자가 죽은 자의 현재 상태에 동참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의무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바뀐다. ……최종 의식은 고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는 단순한 기념식으로 축소된다.”(59쪽)

에르츠에 따르면, 죽음의 집합의식은 당사자를 일시적으로 사회로부터 배제하고 이 배제는 죽은 자를 조상들의 비가시적 세계로 이행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공동체의 차원에서 정신적 분리와 재통합의 과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의 집합표상이 대부분 사라진 현대의 죽음은 사회의 존속과 거의 무관하며 간소화된 의례로 해결되는 사적인 사건으로 축소된다. 납골당은 불멸의 사회를 재현하기보다는 사적 기억들로만 채워진다. 죽음의 애도는 집단적 의례의 틀에서 벗어나 개인의 내밀한 경험으로 흡수되고 만다.

오른손잡이 사회와 종교적 양극성

“우리의 두 손만큼 완벽하게 닮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두 손은 또한 얼마나 불평등하던가! 명예와 돋보이는 칭호, 특권은 오른손으로 향한다. 오른손은 행위하고 명령하고 장악한다. 반대로 왼손은 멸시받고 비천한 보조 역할을 맡는다. 왼손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것은 거들고 보좌하거나 아니면 잠자코 있을 따름이다. 오른손은 모든 귀족의 상징이자 전형이며 왼손은 모든 서민의 상징이자 전형이다. 오른손에 부여된 작위는 무엇인가? 왼손이 겪는 예속은 어디에서 오는가?” (73쪽)

인간 사회는 오른손잡이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오른손이 가진 특권은 명확하다. 교육 자체도 편향적이다. 사회는 오른손잡이가 되라고 사실상 강요해왔다. 에르츠는 이 문제에 주목하고 오른손이 가진 우월성의 기원을 추적한다.

해부학자 브로카의 유명한 생리학적 명제(“우리는 오른손잡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뇌가 왼편잡이이기 때문이다”)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에르츠는 그것이 오른손의 우위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비하다고 밝힌다. 오른손의 특권은 신체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데서 기인하는 사회학적 문제라는 것이다. 오른손잡이는 사회가 따라야 할 이상으로, 왼손잡이는 하나의 위반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에르츠는 오른손과 왼손의 불평등한 생리적 발달에는 세계를 이원적으로 구분하는 사회적, 종교적 관념의 총체, 즉 집합표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종교의 분류체계가 성과 속, 순수와 불순의 이원적 양극성에 기초한다는 사실에 근거해 오른손과 왼손의 비대칭성도 종교적 기원을 갖는다고 본다.

많은 종교에서 생명의 원천인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과 정오의 태양이 비치는 남쪽은 성스러운 방위이고, 해가 지고 어둠이 깃드는 서쪽과 북쪽은 불길한 방위로 여긴다. 기도할 때도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하기에 그 오른쪽은 남쪽이 된다. 자연스럽게 오른쪽은 빛과 열기를, 왼쪽은 어둠과 냉기를 상징하게 된다. 인간은 남성과 여성의 양성으로 이루어지며, 남성은 오른쪽, 여성은 왼쪽이다. 기독교도 이 상징성은 별반 다르지 않다. 기독교의 신은 이브를 창조하기 위해 아담의 왼쪽 갈비뼈 하나를 떼어냈다. 신체의 왼쪽과 여성은 그 본질이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른쪽과 왼쪽, 남성과 여성, 빛과 어둠, 뼈의 건조함과 살의 축축함, 천상과 지상은 종교의 세계에서 양극성의 범주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이런 관념은 언어에도 스며들어 있다. 프랑스에서 오른쪽을 나타내는 단어 droit는 본래 ‘곧바로’란 뜻을 가진다. 여기서 ‘곧바로’란 휘어지고 비스듬하고 서투른 것과 대비되는 정상적이고 확실한 방식을 뜻한다.

에르츠는 만약 인간의 두 손에 비대칭성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인간이 이를 창조해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수세기 동안 왼팔이 체계적으로 마비된 것은…… 성스러움이 속됨을 지배하도록, 집합의식이 불러일으키는 요구를 위해 개인의 욕망과 이익을 희생하도록, 그리고 가치의 대립과 도덕적 세계의 현저한 대조를 신체에 새겨넣어 신체 자체를 정신적인 것으로 만들도록 인간을 부추겼던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는 인간이 극도로 분화된 오른쪽과 왼쪽을 지닌 이중적 존재-호모 두플렉스homo duplex-이기 때문이다.”(97쪽) 이렇게 신체는 사회가 제시하는 이원적 가치의 대립이 새겨지는 장소가 된다.

물론 오늘날에는 오른손잡이로 편향된 사회를 정상적으로 보진 않는다. 왼손에 대한 차별도 많이 약화되었다. 하지만 양손의 평등성이 향상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의 양극성을 뒤흔들기는 어렵다. 에르츠가 보기에 세계가 양극으로 분류된다는 점은 불변하는 인류학적 사실에 가깝다. 에르츠는 이원적 대립체계가 사회적 사유의 구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밝힌 최초의 학자에 속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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