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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이어온 ‘법고창신’ 출간 정신…“이젠 책 보완하는 영상도 제작”
76년 이어온 ‘법고창신’ 출간 정신…“이젠 책 보완하는 영상도 제작”
  • 김재호
  • 승인 2021.12.30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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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출판사 현장을 가다 ⑤ 을유문화사

전문서 ‘이기적 유전자’ 이해 돕는 영상콘텐츠·저자 인터뷰 등 영상으로
사전 주문·책임 판매하는 위탁 판매 제도 개선하고 지역 서점 지원해야

디지털과 온라인이 확산되는 가운데, 전통적인 출판사들 역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학술출판에 주력해온 출판사들은 어떤 도약을 꿈꾸고 있을지 ‘디지털 시대 출판사 현장을 가다’를 통해 알아본다. 과연 디지털 시대에 책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출판사들은 어떤 철학과 경영 전략을 펼치고 있는지 출판사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특히 심혈을 기울였던 책들 중 대표적인 저서 세 권을 뽑아 다시 소개한다. 다섯 번째 출판사는 서울시 마포구에 자리한 을유문화사이다. 

을유문화사는 올해 76주년을 맞이했다. 창립일은 12월 1일이다. 을유문화사는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1945년 탄생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걸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을유문화사. 현재 을유문화사를 이끌고 있는 정무영 대표이사를 지난 3일 만났다. 

 

정무영 을유문화사 대표이사는 학문의 가치를 강조하며 교수들이 바른 목소리를 내길 기대했다. 사진=김재호

이토록 오랫동안 출판사를 운영해온 동력은 어디서부터 나왔을까? 정 대표이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출판은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보다는 사회에 공헌하는 문화 사업’이라는 고 정진숙 창업주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너무 상업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독자들에게 유익한 책, 좋은 내용을 담은 의미 있는 책을 출간하려 애쓰고 있는데 그런 마음이 독자분들께도 전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데 역사가 깊은 을유문화사라도 디지털과 동영상 시대를 헤쳐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을유문화사만의 출판·경영 전략이 궁금하다. “『이기적 유전자』처럼 가볍지 않은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영상콘텐츠 제작을 한다.” 정 대표이사는 이같이 강조했다. 실제로 을유문화사 유튜브에 올라온 관련 영상은 전문 학술서임에도 불구하고 2만3천회∼3만5천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정 대표이사는 “책의 의도를 좀 더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저자 인터뷰 영상을 만드는 등 보완하고 있다”라며 “독자와의 소통이 좀 더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흐름에 발맞춰 저희도 온라인마케팅 인력을 더 보강해 소통의 장을 넓히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변화 폭이 큰 시대에 방향성 제시하다

을유문화사는 인문사회에서 굉장히 깊이 있는 책들을 많이 출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을유문화사만의 학술 출판 방향과 마케팅 전략은 무엇일까? 정 대표이사는 “변화의 폭이 큰 시대에 살고 있기에 현 사회의 변화나 흐름, 앞으로의 동향이나 예측이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라며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학부)의 『공간의 미래』가 큰 사랑을 받은 것도 그런 독자의 요구를 잘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시대를 읽고 잘 풀어낸 국내외 책들을 계속 출간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학술 출판의 접근도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의 『제2의 성』처럼을 재번역하거나 시대에 맞게 글을 다듬어 책을 선보이는 것이다. 정 대표이사는 “『제2의 성』은 시몬 드 보부아르를 연구하는 이정순 박사가 3년 넘게 공들여 옮겼다”라며 “이런 옮긴이나 지은이 선정의 차별이 하나의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탈감 극복하도록 마음을 어루만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의학 정보나 자기계발서 혹은 실용서 등이 주목 받고 있다. 학술출판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문화적 차원에서 어떤 것이 필요할까. 정 대표이사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은 무기력해졌고, 불안해하고 있다”라며 “부의 양극화가 심해져 상대적 박탈감 또한 커졌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즉, 계층 간의 갈등을 줄이고 공생하는 방법을 사회·문화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현 출판 관련 법이나 제도도 개선돼야 한다. 정 대표이사는 ‘위탁 판매 구조’를 지적하며 지역 서점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이사는 “반품과 결제를 바로 적용하지 않는 불투명한 위탁 판매는 출판사들의 경영에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높은 반품률을 개선하기 위해 출판 강국인 독일의 유통시스템을 도입해 개선 중이다. 바로 ‘사전 주문·책임 판매’ 제도다. 그는 “독일처럼 현매 방식으로 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독일은 지역 서점의 온라인 채널 운영과 책 배송을 도매상이 지원하고 있다. 정 대표이사는 이에 대해 “공동 온라인서점을 만들어 주문 관리와 배송을 대행하는 형태”라며 “서점의 특색 있는 큐레이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작은 서점을 지원하는 걸 더 적극적으로 도입·보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지역 서점 활성화 정책 수립과 지원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규정하게 됐으니 변화를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기억에 남는 필자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지 물었다. 정 대표이사는 “70대 초중반에 번역을 시작해서 80살에 이르러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완역한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가 인상적이었다”라며 “번역이 쉽지 않은 작품일뿐더러 다섯 권에 이르는 분량이기에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노년의 열정과 노고가 대단하게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을유문화사는 대학·교수사회와 인연이 깊다. 기자도 대학원 시절 을유문화사 책을 보며 공부했다. 정 대표이사는 “효율 중시 풍토가 팽배하다 해도 학문의 절대적 가치를 훼손시킬 순 없다”라며 “교수들이 그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연구를 이어가면서 바른 목소리를 낸다면 우리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을유문화사도 처음처럼 좋은 책을 만들어 가겠다”라고 약속했다. 

 

‘다시 주목하는 책책책’ 

1. 『익숙한 것과의 결별』(구본형 지음, 2007)

 

 

변화 관리 전문가로 꼽혔던 고 구본형(1954 ∼2013) 소장이 썼다.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한 책이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변한 지금 읽으면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겁낸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변화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데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

 

 

 

 

 

 

2. 『몸은 기억한다』(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2020)

 

 

트라우마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치유 없이 성장과 성과 속에서 내달려 온 현대인의 삶 속에 있는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치유하며,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특히 가르치는 일을 포함해서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는 분들과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작가분들은 꼭 읽어 보시길 권한다.

 

 

 

 

3. 『위대한 패배자』(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2005)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할 줄 아는 멋진 패배를 배워야 한다. 이 책은 위대한 패배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깨닫게 해준다. 패배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과정에 있었던 노력은 어떤 형태로든 남아 소중한 무언가를 만든다. 노력이 만든 아름다운 흔적들이 바로 우리다. 

 

 

 

 

 

올해 76주년 맞은 을유문화사는... 

1945년(을유년) 12월 1일, 우리나라 출판계에 큰 버팀목이자 역사를 써온 을유문화사가 탄생한다. 1946년부터 1957년까지 작업한 ‘조선말 큰사전(우리말 큰사전)’은 영화 「말모이」(2018)에도 등장했다. 
을유문화사는 1959년 세계문학전집을 펴내기 시작했다. 1963년엔 세계사상전집, 1975년엔 한국대표수필문학전집, 2001년엔 을유세계사상고전을 시리즈로 출간했다. 『임꺽정』(1948), 『김약국의 딸들』(1962), 『이기적 유전자』(1993), 『러셀 서양 철학사』(2009) 등 책 제목만 들어봐도 한국 출판의 역사와 함께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난해 창립 75주년에는 본문용 글꼴 ‘을유1945’를 무료로 공개했다. 이 글꼴은 순수 단행본 출판사가 개발한 국내 최초의 전용 서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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