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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명절, 혹은 召集의 무의식
문화비평_명절, 혹은 召集의 무의식
  • 김영민 한일장신대
  • 승인 2005.10.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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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은 대체 무엇일까. 일시에 온 나라의 교통/소통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명절은 2000년대의 지금 우리에게 대체 무엇이 되고 있는 것일까. 멀리는 1789년 이후의 서구에서, 그리고 가깝게는 1960년대 후반의 남한에서 이루어진 '교통/소통로의 국가지배'(P. 비릴리오)가 보편화된 이후, 바로 그 교통/소통의 전국적 일대 변화(?)로서의 명절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일 수 있을까.

늙은 부모와 흩어진 친척들, 그리고 성묘나 한가위의 민속 등을 떠올리는 귀향자의 의식, 그리고 그 의식을 접속-지배하는 매체의 반복된 보고는 명절에 대해서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그 비판적 부정성을 거세당한 채 매체의 물질적 단말기로 바뀐 개인의 의식 속으로부터 진실이 추방당한 게 이른바 '신매체 시대'의 인문적 풍경이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명절에 대해 제대로 알기에는 그 명절이 우리에게 너무 많이 알려진 셈이다. '섹스 상품의 범람은 자동적으로 섹스의 추방을 초래한다'(아도르노)라는 지적은 이미 1940년대 초반의 것이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자연화'된 사이비 정보들의 大海 속에서 인식의 生水는 더더욱 쓰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남자들에게는 명절, 여자들에게는 노동절'이라는 자조섞인 항의의 현실조차도 매체는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 하물며 명절이라는 이름의 교통/소통로의 국가적 結節이 성취하고 있는 정치적 무의식에 대해서는 아예 함구무언이다. 각설하고, 그 모든 체계는 은폐된 盲點을 축으로 순환하는데, 체계가 체계를 보도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곳에 있다. (대체로 우리는 뒷덜미 쪽을 긁지 못하며, 마찬가지로 자신의 항문을 보지 않고 살아간다.) 체계의 맹점은 체계에 대한 환상이 지피는 곳인데, 명절 역시 체계화한 국가(state)가 민족(nation)의 옛 추억에 얹혀 스스로를 공고히 하는 환상의 중요한 일부다.

말하자면, 우리는 개인으로 귀향한다기보다 떼로 召集당한다는 게 조금 더 정확할 것이다. 그것이 귀향이 아니라 소집인 이유는 우선 그 계절적 반복이 별스런 사회적 차이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차이의 상한선은 민속의 소비를 재포장, 재분배하는 상업주의적 함수일 뿐이다. 이른바 '차이가 없는 반복'인 셈인데,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그 차이를 짓지 못하는 반복이 귀향자 개인들의 무능력이나 어리석은 선택 탓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차이를 배제하고 반복을 기율화하는 명절의 역사적 무의식 탓이라는 것이다. 민속이 공식적 세계관에 반기를 드는 대항적 문화로서의 가치를 발휘하는 일(그람씨)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소집의 무의식이 보다 적극적, 비판적으로 언표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명절과 그 전국적 귀향儀式은 민족이라는 국가의 원초적 알리바이를 일거에 강변한다. 그것은 국가가 우리를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는 허위의식의 전시장처럼 보인다. 모를 심는 박정희나 공을 차는 전두환의 대한뉴스처럼, 그것은 국가체계의 어느 깊은 곳에 '인간'이 있다는 이미지를 게시한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국가가 우리를 지배할 수도, 또 중뿔나게 지배할 필요도 없다. '국가는 가족을 통해 여성을 지배'(K. 밀레트)하고, '사회는 억압과 지배의 임무를 소그룹에 떠맡긴다'(H. 르페브르)는 지적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사실은 '국가는 시장을 통해 민족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피와 땅'으로 표상되는 명절의 탈국가주의적 코드는 결코 교통/소통로의 국가지배에 반항하지 않는다. 아니, 신화조차 국가라는 超코드의 외부가 아니다. 명절을 통한 민족적 표상의 전부는 소비자본주의의 체계와 연동되었고, 유비쿼터스 시장의 지배 아래 민족과 국가, 피와 電子, 그리고 땅과 이미지는 자연(실재)과 인공(가상)의 구별이 없이 얽혀들었다. 명절이라는 소통/교통로의 재배치, 그리고 명절의 갖은 표상들은 자본주의-국가와 한 통속을 이루는 것이다. 歸鄕이라고?

김영민 / 한일장신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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