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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_간송미술관의 비밀 (3)최완수 연구실장 인터뷰
특집2_간송미술관의 비밀 (3)최완수 연구실장 인터뷰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5.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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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으로 미술사 봐야..."왕릉연구 곧 마무리할 것"

■일시·장소 : 2005. 5. 24. 간송미술관
■대담 : 최영진 편집주간·중앙대 교수

간송미술관 2층에서 최완수 연구실장을 만나보았다. 간송미술관의 근황과 최근 운영과 관련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완수 실장은 간송의 전통예술을 통해서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우리 예술의 정수를 파악하는 것이 미술사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운영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말을 아꼈다. / 편집자주

▲194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1965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거쳐 2005년 현재 간송미술관 한국민족연구소 연구실 실장으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 국사학과 및 회화과와 대학원, 연세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 등이 있다. ©
△간송미술관은 우리 회화유산의 정수를 보유하고 있다. 전통회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간송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간송 선생은 일제가 물러간 뒤 우리가 문예부흥을 할 자료가 없어질 것을 우려하셨다. 간송은 단순히 골동가치로 작품을 따진 게 아니라, 예술사의 자료적 가치로 따져서 수집하셨다. 우리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을 남긴 단원, 현재, 추사, 겸재를 집중적으로 모아놓았다. 국립박물관은 일제의 식민사관에 의해서 자기들이 필요한 대로 모으기 시작한 것이기에 질적으로 다르다. 간송 선생은 여기를 미술사 연구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셨다. 대학까지도 생각했다. 민족 예술사를 연구해서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간송의 뜻과 나의 목적이 다르지 않았고, 그 세월이 벌써 40년이다.”


△그런 역사관, 예술관으로 간송학파를 일궜는데, 진경문화를 이어가는 원칙이나 기준이 있을 것 같다.
“우리 문화를 자존심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말로만 식민사관을 탈피한다고 할 게 아니라 원전을 직접 읽어서 우리 가치관으로 관찰하자는 것이다.그래서 예술사가 굉장한 공헌을 하는 것이다. 기록은 아무리 잘됐다 해도 기록자의 주관이 배제된다. 시대가 배제되고 이해관이 배제된다. 그런데 예술은 그 시대를 이끌어갔던 이념이 어떤 것인가를 극명하게 반영한다. 그 꽃을 잘 읽으면 뿌리를 알 수가 있는데, 반대로 뿌리가 제대로 돼야 꽃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그 작업을
요즘 하고 있다. 나의 이런 발상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서구식으로 발상하도록 배웠으니까.”

△우리를 너무 강조하면 과거를 이상화시킬 우려도 있는 듯하다.  최근 진경문화의 계급적 기반인 경화사족의 사치스러운 문화적 취향에 대한 비판도 등장했는데.
“그건 괜히 트집 잡으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비판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핵심이 중요한 것이다. 상층부가 바뀌면 하층문화도 자연히 따라가게 돼 있다.”


△중국과 우리 예술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중국을 지켜보다가 필요한 것만 딱 받아들였다. 그런 시각을 갖고 우리 예술을 살펴봐야지, 그냥 같다고 보면 죄다 같아 보인다.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 신선들의 얼굴을 평범한 우리 얼굴을 다 바꿔놓았다. 달마대사도 마찬가지다. 동주가 이런 얘기를 하긴 했는데, 명확하게 하지 못했다.”

△한국미론과 일본의 관계도 중요해보인다. 특히 야나기 무네요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텐데.
“그가 우리 민예품을 긍정적으로 보고 좋아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지만은 않는다. 그 사람이 일제강점기 아닌 때 그랬다면 모르겠지만, 일제강점기 때 그랬다. 그러니까 식민통치를 해야 하는데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우리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최고’를 인정한 게 아니라 ‘민예품’만 드높였다. 그것보다 더 훌륭한 것도 많은데 말이다.”

△현재 소장유물에 대한 연구의 진척도는 어느 정도인가.
“학문이란 게 만족이 없다. 하고 또 하는 것이고, 지금은 큰 틀을 잡아놓은 정도이다. 식민사관이란 게 조선을 정체된 나라였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세상에 5백년이 정체된 국가가 어디 있나. 그리고 당쟁 때문에 망했다고 하는데, 당쟁이 오히려 정치를 썩지 않게 한다. 당쟁할 때가 오히려 절정이다. 일당 독재를 하면서 조선이 쇠약해진 것 아닌가. 이런 시각을 바로 잡아주는것, 큰 틀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내 연구다.”


△제도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현재 개인 컬렉션 중심으로 돼 있는데.
 “우린 제도 같은 것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선비집단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연구위원들에게 봉급은커녕 차비도 제대로 안 준다. 그야말로 뜻을 같이하는 이념집단이다. 돈을 주고 유지되는 그런 집단이 아니다.”


△최완수 이후 간송이 잘 운영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있다.
“나는 우리 역사를 낙관적으로 본다. 내가 좀 미친놈인가. 여기서 40년을 이러고 있는 건데 이게 다 조상님들이 시키는 거지 개인이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2천년 동안 씨름하고 통일하고 해온 나라인데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잘 보존해나가면 된다. 간송 돌아가셨을 때 내가 이렇게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준하는 유물을 갖고 있는데, 그에 걸맞은 사회적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국가도 무관심한 것 같다.
“우리 문화가 성숙이 돼야 하는데 아직 성숙 안 됐다고 본다. 차차 성숙되지 않을까.”

△정부에서는 간송이 먼저 얘길 해야 도와주지 않겠는가 라는 입장이다.
“그럴려면 점검을 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왜 이 일을 하겠나. 문화의 수준이라는 건 문화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의 자존심이라는 건데, 자존심 버리고 돈 쫓아다니는 게 옳은 일인가. 우린 그 자존심 하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미술관 건물이 낡았는데 수장고에 이상은 없는가.
“보관이나 보존문제는 가능한 한 입에 안 올린다. 30년이 지나도록 어떤 기자한테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간송미술관이 잘 보존해왔지만, 그림을 접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불만이 제기된다.
“그림은 우리도 안 본다. 박물관의 기능은 첫째가 수집, 보존이고 둘째가 연구이며 셋째가 전시다. 그런데 요즘 잘못 생각해서 전시를 첫째로 꼽는다. 우리가 이어갈 수 있었던 건 계속 보존에 힘썼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로 안 보여준다. 우리 민족은 보존을 잘 안한다. 그런 불만은 보존을 등한시하는 사고관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보여줄 때 보고, 또 자료를 통해서 봐야 한다. 나도 아무 때나 자유롭게 안 본다. 그건 미술사를 모르는 초짜들이 하는 얘기다.”


△앞으로 추가적인 전시계획이 잡혀있는 게 있나.
“긴 계획 세워놓고 일을 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할 뿐이다.”  


△개인적인 저술 계획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
“당장 해야 될 게 30대에 조선시대 왕릉을 연구해놓은 것을 정리해서 내는 것이다. 왕릉은 조선이 시작될 때부터 망할 때까지 있는 건데 그것부터 확실히 조사를 해놓고 출발했다. 누가 별소리를 해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왕릉은 정치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을 다 반영한다. 가령 영조왕릉에 가면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실사에 가깝다는 느낌을 확 안겨준다. 진경시대에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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