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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교수 자녀의 국적 포기, 어떻게 봐야 하나
[교수논평] 교수 자녀의 국적 포기, 어떻게 봐야 하나
  • 신정완 / 성공회대
  • 승인 2005.05.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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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비난 효과없어… 다만 교육이 걱정일 뿐

▲신정완 / 성공회대 경제학 ©
지난 5월 4일에 국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주로 병역기피를 위해 자녀의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신청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국적포기자 부모의 직업분포인데 교수나 연구원의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예상했던 대로 국적포기자들이 선택한 국적의 압도적 다수가 미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정이 알려지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국적포기자 부모들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거세게 일어났고 한나라당의 홍준표 의원은 국적포기자들의 국내 금융거래와 교육 등의 기회를 박탈하는 내용의 입법안을 만들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적포기자 및 그 부모들을 이렇게 일종의 범죄자처럼 취급하여 도덕적 비난을 쏟아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우선 이들은 법률이 허용하는 행위를 한 것이고 이들의 선택이 타인에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피해를 주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또 대부분의 사회 문제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서도 도덕적 비난은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언론에서 빈부격차 문제를 거론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끼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강남의 룸살롱들은 성업 중이라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 그리고 그저 그것으로 끝내버리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필자 역시 교수나 연구원과 같은 전문지식인들, 특히 학생을 교육하는 교수들이 국적포기자 부모 대열의 최선두에 서 있다는 사정은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저해가 되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미국에 정치경제적으로 의존하여 발전해온 역사로 인해 사회의 구심력이 약하고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으로부터 유래하는 원심력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는 사회이다.

특히 우리 사회의 지배 엘리트 집단은 일반인들에 비해 대체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미국과 훨씬 강한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교수들의 경우엔 주로 미국 유학을 통해 미국과 인연을 맺게 되고 유학중에 출산한 자녀들은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보유하게 된다. 국적포기 신청자 부모 중에 교수가 유달리 많은 것은 아마도 이들의 ‘성향’보다는 이들이 접근할 수 있었던 이러한 ‘기회’에 더 크게 기인할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가르치는 학생의 대다수는 이들과는 다른 조건을 가진 ‘보통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남학생의 대다수는 군 복무를 해야 하고 제대 후에도 여러 해에 걸쳐 예비군 훈련에 동원되어야 한다. 또 남녀 학생의 대다수는 소위 ‘세계화 시대’에도 이 사회에 남아 복닥거리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특히 결혼하여 부모가 되고 난 후에는 자녀의 교육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이러한 ‘보통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의 상당수가 자신의 제자들과 많은 고민거리를 공유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한 중요한 해결책의 하나는 교수 등 전문가집단을 주로 국내에서 양성하고 충원하는 데 더 힘을 쏟는 일일 것이다. 우리 사회로부터 쉽게 ‘탈출하는 선택’(exit option)을 취할 수 없어 성가시고 지겹더라도 결국 ‘발언을 통해 개선하려는 선택’(voice option)을 취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따라서 많은 측면에서 대다수 서민대중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중심부에 넓게 포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종류의 해묵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첩경일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지식인의 대표격인 교수의 구성에서 국내박사의 비중을 높이려 노력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으뜸가는 방안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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