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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_‘이에(家)’로 풀어 본 일본
학이사_‘이에(家)’로 풀어 본 일본
  • 임경택 전북대
  • 승인 2005.05.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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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라는 말은 일본인이라면 4~5세가 되면 사용하기 시작할 정도로 생활 안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절실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일본문학에서도 ‘이에’문제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다루고 있을 정도로 ‘이에’는 일본인의 일상 중 어디에서나 부딪히지 않을 수 없는 절실하고도 복잡한 사회문제인 것이다. ‘이에’는 이에제도라고 불리는 것의 토대가 되는 것이지만 양자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러한 점이 사회과학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이에는 가산과 가업을 운영하는 집단이고, 世代를 넘어 연속하는 것으로서 世帶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비혈연자도 포함시킬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전근대시기에는 카부(株)라는 지역공동체(村)를 구성하는 권리와 의무의 단위로서 존재했고, 지역공동체는 ‘이에’의 연합으로 형성됐으며, 그 외에도 본가와 분가의 동족단을 구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실재로서의 ‘이에’에 대한 연구는 가족연구 외에도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조직원리와 집단주의 및 구 재벌에 관한 내용이다. 일본 내의 일반적인 집단에서부터 스모베야 혹은 폭력집단인 야쿠자라는 특수집단에 이르기까지 이에의 원리가 관통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집단주의의 중요한 특성으로서 정원제와 업적주의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전술한 내용들, 특히 ‘이에’와 지역공동체의 존재방식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구 재벌들은 우선 복수의 이에로 구성된 동족단이었고, 그들만의 성문법인 家憲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봉건적인 성격의 ‘이에’를 계승하고 유지하려는 기본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각 재벌의 가풍을 살피고 일본 자본주의 전개과정에서 보여주는 생존전략을 ‘이에’라는 시점에서 분석하는 것은 서구근대독점자본과는 다른 일본적인 특질을 파악할수 있게 해줘 또 하나의 흥미를 제공해 준다. 

한편, 이에제도는 패전 후 민주개혁에 의해 폐지됐지만, 중앙집권적인 일본국가 내에서 일률적으로 규격화되고 법제화된 제도로서 현재도 그 유제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국가법으로 형성된 이에제도가 민법전에 의해 확립되는 것은 1898년이었다. 특히 메이지정권은 나라(國)와 이에를 연결해 가족국가관을 제시했고 그 정점에 텐노케(天皇家)를 두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종교적으로 伊勢神宮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신도를 통해 강화함으로써 근대국민국가조직을 완성한다. 즉, 통치의 기초를 종국적으로 ‘이에’에 두고 있었는데, 그것은 전 국민을 등록시킨 호적제도를 통해 실현됐는데, 이는 이에의 관념성에 기초한 국민교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정치성과 더불어 ‘이에’는 일본경제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녀왔다. 전술한 구 재벌의 예나, 자본형성을 위한 단독상속 등과 같이 경제정책은 항상 이에에 관한 정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나는 박사학위논문에서 이와 같이 국가(國+家)라는 용어의 해체를 통해 일본의 사회와 문화를 새롭게 보고자 시도했고,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일본이라는 명제를 앞에 두고 스스로를 닥달하고 있다. 

임경택 / 전북대 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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