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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직접 민주주의의 ‘고급과정’
문화비평_직접 민주주의의 ‘고급과정’
  • 김진석 인하대
  • 승인 2005.05.0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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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주의가 자유와 평등을 실현시켜주는 최적의 체제라고 믿는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동시에 구조적으로 갈등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화적 체제다.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자유’와 ‘민주’라는 가치는 구조적으로 충돌하는 면이 많다. 또, 모든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에 나름대로 정당성을 다 부여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적 전제 중 하나라면, 부글부글 끓는 갈등의 모습은 민주주의에 대한 욕이 아니라 오히려 칭송이라고 해야 할 터. 또, 그저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차이들을 생산하는 체제가 미래 민주주의의 모습일 터.

이렇게 보면 한국이 극단적인 위험사회라는 점은, 정말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는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역동성과 장점을 증명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 역동적 장점을 잘 견뎌내고 거기서 긍정적인 힘을 뽑아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역동성이 요구하는 희생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엄청나다. 더욱이 이 희생에 대한 판단이 가치나 관점에 따라 너무 다르다. 갈등을 인정하자는 말은 쉽다. 그러나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실제로 대부분 최대한 갈등을 매끈하게 줄이는 것이 민주화 과정이고 더 나아가, 갈등이 전혀 없는 평화 상태가 민주주의의 목표라고 이해되곤 한다. 과연 그럴까. 민주주의는 오히려 갈등을 더 생산하고 요구하는 듯하다. 민주주의가 평화로운 상태를 순수한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신화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 사회를 개혁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시 갈등을 조장한다. 갈등들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결국 없애야 할 것으로 인식하다보니, 그 시도 자체가 다시 갈등을 부채질한다. 근본주의적 이상으로 설정된 민주주의는 갈등의 존재는 인정하되, 그것을 다만 갈등이 없는 상태로 가는 길목에 놓여있는 방해물로 본다. 이 경우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적 이념, 곧 갈등과 싸움 없는 평화상태는 현재 진행되는 민주주의의 현실적 모습을 억압하고 부정할 지경이다.

묘한 점은 어쨌든 그렇게 갈등을 없앤다면서 다시 갈등을 생산하는 근본주의도 민주화의 ‘고급과정’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갈등을 없앤다면서 다시 생산하기에? 아니면 생산하면서 없애려고 하기에? 민주주의는 분열증에 빠지면서 아득해진다.

직접민주주의는 이 분열증을 치료할 수 있을까. 참여정부라는 구호가 언젠가부터 매력을 잃은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참여’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도 고대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민주주의 이론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정 사실로 전제한다. 사실 고대 그리스시대에 모든 시민들이 아고라에서 이성적으로 공적 정치에 참여했다는 말은 아주 오래된 신화일 뿐이다. 실제로는 입후보하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은 상태에서 제비뽑기로 대표를 뽑는 일이 다반사였다(특별한 능력이 요구되는 자리에는 검증된 사람이 연임되기도 했다). 상황은 지금도 비슷하다. 개혁하기 위해서 직접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직접 참여하거나 공적 정치에 입후보할 생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개혁은 간절히 원하면서, 왜 직접 참여하지 않는 걸까. 능력이 없어서, 아니면 희생을 하기 싫어서? 어떤 희생?

우선 공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대표를 뽑는다는 대의제가 사실은 허구라는 데 주의하자. ‘훌륭한’ 인재를 뽑는 일이 선거인 양 선전되지만, 사실 큰소리로 말 잘하는 혹은 ‘다른 숨은’ 능력이 있거나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입후보하는 일이 오히려 일상적이다. 불행하게도 직접 민주주의는 저절로 혹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적 정치에의 참여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적 희생을 요구한다. 입후보하는 사람도 자신이 희생한다고 여기겠지만, 직접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특히 자신의 사적인 희생을 염려하거나 배려한다. 또는 아무리 자신이 ‘공적으로 희생해도’ 훨씬 정치적인 사람들의 정치적 동물성에 의해 그것이 가려진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참여는 잘 오지 않는다. ‘민’과 ‘주’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심연 아니, 심연이 아니다, 광장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김진석 / 인하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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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탱이 2005-06-06 15:21:04
20대후반의 젊은이입니다...글을읽고 많은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짧은인생이지만 민주주의를 학습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것과 그걸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는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의 한계이겠지만요. 하지만 저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드니까.. 다수가 가지고 아직 가지고 있지도 않는 것을 이상으로 떠받들고 있는것은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애당초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부터 다수의 사람들이 생활속에서 쉽게 또는 자연스럽게 습득되지 못하는 무엇이라면 쉽고도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어떤 방법을 먼저 찾아보는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이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