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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더 늦기 전에 할 일
학이사: 더 늦기 전에 할 일
  • 서범석 대진대
  • 승인 2005.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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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범석 / 대진대 국문학

‘한국 농민시 연구’, ‘한국 농민시’(자료편), ‘한국 농민시인론’이란 세 권의 책 속에 필자가 20년 동안 밟아온 학문적 삶의 어설픈 결과가 들어 있다. 근대사에서 격변과 고난의 세월을 겪어온 한국인의 정신적 傷痕이 문화의 곳곳에서 응얼대고 있음을 재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따라서 새롭고 알찬 삶을 위해서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고 민족적 아픔을 치유하는 일은 이 시대의 한국인들에게는 절실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 작업은 단시일에 몇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민족사는 우리에게 포기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농민시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이 부자유의 행복 속에서 ‘한국 농민시’를 바라보았고, 그 뒤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진 ‘농민시인’들에 초점을 맞추어 오는 동안 불구의 분단문학사와 짝을 이루고 있는 시인들의 예술혼의 상처를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분명 이 땅에 태어나 문학적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문학적 생애는 실종되거나 망각되어 있었다. 이 사건의 주범은 일제강점과 민족분단 등 민족수난의 역사다. 송순일, 허문일, 백석, 유도순 등은 북한 출신의 재북문인들이니까, 이흡, 정호승 등은 소위 월북문인이니까, 이서해는 북만의 찬 바람 속을 헤매다 행방불명되었으니까, 양우정은 분단 후 정치나 언론으로 무대를 일시 바꾸어 간 카프출신 문인이니까 등등의 이유로 그들의 문학적 생애는 매몰되었던 것이다. 임연(임현극), 이혜숙 등은 분명 남한 출신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암흑기 이후 종적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들을 포함한 많은 농민시인들은 이데올로기보다 ‘민족’을 소중하게 생각해 민족의 아픈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문학적 재능과 정열을 모았던 것이다. 이들에 대한 세심한 연구 없이 옹근 민족문학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실종된 농민시인들에 관한 1차자료인 ‘시집’들의 운명도 그들의 문학적 생애와 다르지 않다. 그들의 시집은 분명 ‘있었으나 없는’ 것이었다.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단과 이후의 냉전은 이들의 시집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없는 형태는 두 가지인데, 망실되어 찾아볼 수 없는 것과 있어도 볼 수 없도록 금지됐던 것이다. 어느 쪽이나 파행의 민족사를 증언한다. 어찌 되었건 농민시나 농민시인들의 버려지고 잊혀진 자료를 추스르면서, 험난했던 파도와 거기 떠내려간 시인들이 겪은 비극의 상징성을 읽으면서 이들을 문학사의 전면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실종문인들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살피면서, 문학연구에 우선 필요한 것은 원전비평을 비롯한 역사주의적인 연구 방법과 태도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형식주의도 신비평도 후기구조주의도 작품의 이해나 평가에 본질적으로 소중한 것이지만 역사주의적 고찰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일이다. 늦기 전에, 아니 늦었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작품과 작가의 생애자료라도 건져내고 갈무리하는 데 힘을 모았으면 한다. 흩어지고 떨어져나간 작품들을 찾아 모으고 한 사람이라도 더 생존해 있을 때 실종문인들의 생애를 확인하는 일, 어찌 농민시나 문학만의 문제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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