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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잊을 수 없는, 낯 뜨거운 실수
학이사: 잊을 수 없는, 낯 뜨거운 실수
  • 홍정선 인하대
  • 승인 2005.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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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담당하고 있는 강좌에 ‘현대시읽기’라는 게 있다. 전에는 ‘현대시강독’이라 부르던 강좌다. 서당 개 3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듯이 같은 강좌를 20년 넘게 담당해왔으면 눈감고도 물 흐르듯이 강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강좌의 수업에 임할 때는 늘 긴장을 한다. 그건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낯 뜨거운 실수 때문이다.

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주 질문을 던진다. 한 편의 시에 대해 내가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학생들과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더 나은 교육이 될 것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이 구절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느냐? 왜 그렇게 생각 하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 하느냐? 이런 식의 질문을 집요하게 해서 스스로 생각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가끔 괴롭힌다.

내 실수는 바로 학생들이 ‘가학적 취미’라고 부르는, 이 질문 때문에 발생했다. 아마 1980년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30대 중반의, 아직 정열이 식지 않은 젊은 교수였던 내가 김소월의 ‘옷과 밥과 자유’라는 시를 가르치던 시간이었다. 먼저 시를 두세번 천천히 읽고,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시의 세 연은 순서대로 옷과 밥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제대로 입을 것이 없고, 먹을 것이 없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이 시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는 세상이 그렇다는 말을 직접적으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지만 독자들이 그런 세상이란 사실을 인식하게 만드는  표현 방식이 재미있다.

이런 이야기, 일종의 힌트성 설명을 먼저 한 다음 학생들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첫째 연에서 시의 화자가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며 너는 몸에 깃도 있고 털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의미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내 딴엔 너무 쉬운 질문이어서 금방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학생들이 엉뚱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A라는 학생은 하늘을 잘 날 수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B라는 학생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C라는 학생은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잖아요라는 식으로 답답한 대답이 이어지면서 내 젊은 혈기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F학점을 무자비하게 줘서 ‘쌍권총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혈기에 넘칠 때였다. 그런 내 앞에서 이런 한심한 대답이 이어지고 있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D라는 한 여학생이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전매특허인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을때 마침내 나는 벽력처럼 소리치고 말았다. “너는 몸에 털이 있니 없니?”라고.

이렇게 소리치고 이제는 제대로 시의 의미를 알았겠지 하고 교실을 둘러보니 그 여학생은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있고, 학생들은 모두 냉동실에 넣어둔 생선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게 아닌가. 아뿔싸, 때는 이미 늦었다. 여자 몸에 털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깃이 있어 없어 하고 묻지 하필이면 털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다니.

80년대니 다행이었지 지금처럼 여성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인터넷이 보급된 시대였다면 아마 성희롱 교수로 찍혀서 교단에서 영원히 추방됐을지도 모른다. 황급히 시의 화자가 새를 보며 너는 깃과 털이 있지만 나는 입을 옷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냐는 설명을 덧붙이며 넘어 갔지만 참으로 아찔하고 낯이 화끈거리는 실수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이 수업시간에는 늘 긴장을 한다.

홍정선 / 인하대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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