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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이 배운 연옥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이 배운 연옥
  • 임치균
  • 승인 2021.07.23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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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연옥약설』 이문어 지음 | 임치균 , 조현범 옮김 | 한국교회사연구소 | 360쪽

연옥 체험담, 고통스러운 벌과 천주교 가르침
연옥약설은 연옥이 존재하는 교리적 이유를 제시

우리나라에서 한문이 표현의 중심 수단이었을 때, 문화는 특정 계층을 중심으로 향유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옛한글로 번역되는 순간, 저변이 확대되고, 자연스럽게 계층 간 소통도 이루어졌다. 

이는 천주교의 교리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우리나라의 경우, 아마도 교리 이해에 대한 신자들의 요구가 계속 있었을 것이다. 번역본인 『셩경직ᄒᆡ광익』이 유통되고, 옛한글로 쓰인 다양한 천주교 문헌들이 발견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 하겠다. 

이들 문헌 가운데에서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련옥략셜』은 구체적인 천주교 교리를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인간은 누구나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천주교에서는 죽음 이후의 영혼이 있는 곳으로 천당과 지옥 그리고 연옥을 두고 있다. 특히 영원한 생명을 믿는 천주교인들은 인간적 죽음 이후에 드러나는 연옥(煉獄)에 관심이 많다. 

연옥은 깨끗하게 정화한다는 뜻의 라틴어 동사 푸르가레(purgare)에서 유래한 푸르가토리움(purgatorium)을 한자로 번역한 말이다. 중세 이래, 천주교에서는 천당으로 갈 영혼은 살아 있을 때 지었던 여러 가지 잘못에 대해서 벌을 받아 정화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바로 연옥이다. 동아시아인들이 이 연옥에 대하여 모두가 궁금해할 때, 중국인 예수회 신부 이문어(李問漁, 1840∼1911)가 1871년에 『연옥약설(煉獄畧說)』을 출판하였다. 

살아 생전 지었던 죄를 벌로 정화하다

이 책은 모두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옥이 실제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논증, 연옥에서 당하는 형벌에 관한 생생한 묘사, 연옥에 있는 영혼의 상태, 연옥이 존재하는 교리적 이유, 연옥에 있는 영혼이 정화 과정을 마치고 승천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 등 다양한 교리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성경』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그리고 여러 신학 서적과 교리서 등에 실린 내용들을 참고하였으며, 아우구스티노, 암브로시오, 보나벤투라, 요한 크리소스토모 등 여러 천주교 성인들이 남긴 말들을 인용하고 있다. 이문어 신부가 예수회 신학교에 재학하면서 읽었던 각종 천주교 서적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각 소절이 끝나는 곳에 ‘옛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옥을 실제로 체험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한두 편 수록하고 있다. 특히 중국 신자인 안매민(顔魅賓)의 연옥 체험담도 실음으로써, 천주교 교리가 결코 서양인 중심으로만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런 이야기들은 연옥이 실제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영혼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벌을 받게 된다는 천주교의 가르침에 사실성을 더한다. 이러한 구성은 연옥을 생생한 종교적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효과를 낳는다.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은 이 책을 거의 축자역하여 『련옥략셜』이라는 제목으로 필사해내었다. 이문어 신부가 쓴 한문본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옛한글로 번역됨으로써 『연옥약설』은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련옥략셜』이 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였을 옛한글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표기나 어휘, 문장의 구성 등에서 매우 낯설고 어렵다. 옛한글을 지금의 한글로 바꾸려면 번역의 차원으로 보아야 한다. 한글을 한글로 번역한다는 것이 어색해 보일 수도 있다. 아예 번역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하지만, 옛한글과 지금 한글의 관계는 한문이나 영어를 우리 글로 번역하는 것 이상으로 까다로운 일이다. 련옥략셜의 옛한글 원문과 현대어 번역 부분을 대비하여 읽어보면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천주교 문헌들뿐만 아니라 많은 옛한글 자료들이 전하고 있다. 금번에 이루어진 『련옥략셜』의 현대어 번역과 같은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소중한 문화유산에 마르지 않는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임치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고전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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