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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이 땅에서 동양학자로 살려면
學而思: 이 땅에서 동양학자로 살려면
  • 장현근 용인대
  • 승인 2005.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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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학자로 살려면 적어도 다음 세 가지를 참아내야 한다. 특히 팔리지 않는 학문분야, 그것도 동양의 전통사상을 전공하는 필자 같은 서생들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해서도 안 된다. 첫째, 자본의 시녀임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경제 우위의 시대에 학문이 생존수단으로 상품과 동일시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학자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소위 학자들끼리의 담론 현장에서도 지성의 역사와 문명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이상적’인 사람들은 무엇엔가 빚을 진 듯 주눅이 들어 있고, 회사 사장들의 요구에 따라 이문을 남기는 경쟁을 얘기하는 ‘현실적’인 사람들은 항상 의기양양하여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 참아내야 한다. 둘째, ‘후진국’ 학문임을 달가워해야 한다. 그래서 소위 ‘선진국’ 학문을 빌어다 각주를 다는 학자들이 지식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학문의 목적이 삶에 대한 각성이며 체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랜 학문사를 부끄러워하며 후진을 자처하지만, 사적으로 부러워하는 나라나 대학의 누군지도 모르는 학자의 글을 부지런히 수입해 팔아먹는 사람들은 권력을 휘두르며 선진을 자랑한다.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참아야 한다. 셋째, 배우 노릇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그래서 외국어를 섞은 화려한 언변과 외모로 매스컴을 넘나드는 학자들이 학계를 재단하고 있다. 저널리즘에 거리를 두고 엄한 훈육과 진지한 고민으로 가르치는 사람은 강의평가를 못 받고 ‘보수적인’ 교수로 취급되며, 신문을 원천 삼고 코미디언 몸짓에 능숙한 사람은 신선한 명성을 누리며 ‘진보적인’ 교수로 대접받는다. 딸깍발이에 만족할 수 없으면 참아야 한다.

이 땅에서 동양학자로 살려면 적어도 다음 세 가지에 충실해야 한다. 하나는 교육이 修身이 아니라 장사라는 생각에 충실해야 한다. 대학의 구조개혁 운운이 대학 기득권자들의 자기수호 논리임을 철저히 감추고 학문발전과 학생을 위한 일이라고 강변할 줄 알아야 한다. 학생이 고객이고 총장이 십장이고 교수가 점원이라는 데 동의할 줄 알아야 한다. 둘째는 전통적인 것들을 버리는 데 충실해야 한다. 분석, 객관, 검증이 안 되는 동양 학문은 ‘미신’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말아야 한다. 종합적이고 주체적인

학문적 깨달음에 기초한 사회참여, 즉 修己治人 따위는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탁상공론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최신과 첨단과 경쟁에 충실해야 한다. 고전과 글씨로 수양하고 窮理를 하는 학자는 의미 없는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빠른 연구결과와 양적인 논문평가를 신봉하고 교육부로부터 잡지사에 이르기까지의 무수한 평가에 첨단으로 순응해야 한다.

이 땅에서 동양학 하는 학자로 살아가려면 술자리에서 이런 비분을 토로할 듯하다. 이상과 현실은 조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학문과 문화의 영역에 어찌 선진과 후진의 우열이 있겠는가, 보수와 진보는 동전의 양면이 아니겠는가. 동양사상을 전공하면서 필자의 가장 큰 고통 또한 이렇듯 선진 자본주의 지식권력과 어울리지 못함이었다. 자본주의 대안모색은 동서양의 절충과 융합을 통해 얻어질 것이다. 동양 전통 학문에 대한 주체적 탐색과 인식의 전환이 숙제다.

장현근 / 용인대·중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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