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2:35 (토)
문화비평_이분법의 자폐
문화비평_이분법의 자폐
  • 조광제/철학아카데미
  • 승인 2004.11.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에서 부시가 다시 대통령이 되는 모양이다. 그는 근본주의 기독교의 신심에 따라 세상사를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두 축으로 나누는 것에 익숙해 있는 것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현대 철학의 담론에서는 이분법적 사유 체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비판을 가한다. 이분법은 근본적인 차이를 강조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적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른바 일방적인 폭력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특히 마니교적인 선악의 이분법은 특히 폭력적이라 해서 비판을 가한다.

이분법적인 사유 체계는 대단히 공격적인 단순 무식한 신념 체계로 발전한다. 둘을 나누는 경계선이 너무나 뚜렷해 건너갈 수 없는 깊은 심연과 같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항상 저쪽이 내 쪽을 공격해 완전히 무너뜨릴 태세를 취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저쪽이 내 쪽을 공격해 오기 전에 선제공격을 해서 저쪽을 무너뜨리는 길 외에는 내 쪽이 살아날 길이 없다고 여긴다. 서로가 너무나 닮아 있어 저쪽의 모습에서 거의 정확하게 내 쪽의 모습을 읽을 수 있는데도, 그러니까 사실은 순전히 저쪽에 대한 반동적인 기운에 의해 내 쪽의 근간이 형성되어 있는데도 미친 듯 죽어라고 저쪽에 대한 공격을 일삼는다.

미 대선이 있기 직전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러 못지않은 제2의 대대적인 테러가 있을 수 있다는 인故娥?공개됐을 때, 1987년 대한민국 대선 직전에 KAL기 폭파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폭력은 근본적으로 반동적이다. 폭력은 반동적인 폭력을 일으키고, 그 반동적인 폭력은 다시 반동적인 폭력을 일으킨다. 그런 과정이 없이는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도 영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분법적인 신념 체계에서 볼 때, 평화는 전략전珦岵?잠재적인 폭력의 준비 과정 즉 냉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분법적 신념 체계에 확실하게 물든 자들은 저쪽이 내 쪽보다 확실하게 강하다고 여겨질 때에는 쉽게 피학증적 태도를 보이고 저쪽이 내 쪽보다 확실하게 약하다고 여겨질 때에는 쉽게 가학증적 태도를 보인다. 확실한 기회주의가 뿌리 깊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시청 앞 광장에 모인 복음주의인지 근본주의인지 둘 다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독교인들의 반동적인 세력 과시에서 이를 쉽게 읽을 수 있다. 군사독재 시절 그 강고한 이분법적 신념 체계에 의한 폭력에 의해 피학증자처럼 쾌락을 즐기던 세력들이 이분법적 신념 체계를 공고히 떠받치던 법을 폐지하려하자 견디지 못해 반동적인 힘을 과시하면서 가학증자로서의 쾌락을 즐기는 것이다.

제 스스로 삶을 궁극적으로 긍정할 수 있는 길이 없을 때, 그런데도 삶을 정당화할 길을 찾고자 할 때 가장 손쉽게 빨려드는 것이 이분법적인 신념 체계다. 타자의 죽음을 수단으로 해서 내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데서 끝내는, 내 삶의 이유를 오로지 타자의 죽음에서 찾고자 하는 비참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이분법적인 신념 체계다. 그래서 정확하게 딜레마에 빠진다. 정작 타자가 절멸되면 내가 닭 쫓던 개의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닭이 어디 한 마리뿐인가. 닭이 없으면 자신의 표상 바닥에 가상의 닭을 만들어서라도 공격할 것이다. 바깥에 적이 없으면 내 속에서라도 적을 만들어 공격을 하지 않으면 사는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정도로 이분법적 신념 체계는 그 뿌리에서부터 타자 공격적이면서 자기 공격적인 타자 관계라고 하는 딜레마가 작동하고 있고 또 그런 가운데 반동적인 쾌락을 즐기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이분법적인 신념 체계에 대한 비판마저 이분법적이다. 신념 체계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이분법적이기 때문이다. 이 글 역시 이분법적 신념 체계에 의한 것으로 읽혀질 것이다. 그러니까 이분법적 신념 체계는 절대적인 자폐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