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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은폐사회'의 禁忌
문화비평_'은폐사회'의 禁忌
  • 조광제 서울산업대
  • 승인 2004.10.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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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판다. 도대체 몸을 팔지 않고는 그 누구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 세상이다. 원초적으로 보면, 자본주의는 무조건 남의 몸을 사서 부리는 욕망으로 성립된다. 민주주의는 나의 몸을 팔지 않으려는 욕망으로 성립된다. 무조건 자신의 몸을 팔지 않으려는 민주주의를 고집하면 어느덧 아무도 자신의 몸을 사지 않으려 하고, 몸값이 제로가 된다. 남의 몸을 무조건 사기만 하려는 자본주의를 고집하면 어느덧 아무도 살 수 없는 몸, 즉 무한한 몸값을 지닌 신이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타협해 안팎이 뒤섞이는 뫼비우스의 띠가 된다. 누구나 적정하고 정당한 값으로 몸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나의 몸을 절대로 팔지 않겠다는 민주주의의 욕망은 ‘나는 인간이다’라는 새로운 표현의 형식으로 전이돼 나타나고, ‘인간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른바 인권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의 내용으로 전이돼 나타난다. 그럼으로써 ‘사고팔 수밖에 없는 몸’이라고 하는 실재적인 기반에서의 사태는 ‘사고팔 수 없는 인간’이라고 하는 표면의 효과에 의해 은폐되고 위장된다.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표현적인 개념을 통해 스스로가 ‘몸’의 실재적인 차원을 넘어선 승화된 존재로 인식되고자 한다.

그러나 몸은 인간의 정체를 밑에서부터 폭로한다. 기실 인간은 몸이기 때문이다. 몸은 인간과 동식물을 비롯한 다른 사물들 간의 연속성을 형성해내는 기반이 된다. 그래서 인간을 몸으로 되돌리게 되면 굳이 생태학적인 관점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인간과 동식물 및 일반 사물들 간이 연속적인 실재성을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개념이 그 실재적인 층위인 몸과 분리?독립되면, 동식물 및 일반 사물들에 대해 불연속성을 야기하면서 초월적인 단절을 분출하게 된다. 몸은 사고팔 수 있어도 인간은 사고팔 수 없다는 생각의 기원은 여기에 있다. 

매매춘은 몸이 인간의 정체를 드러내는 정확한 지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매춘이 몸만의 실재 영역에서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몸이 인간의 정체를 드러내는 데에는 인간이라고 하는 표현의 영역이 소환돼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매매춘은 ‘몸’이라는 검사가 ‘인간’이라는 피고를 소환해 심판하는 실재성의 법정인 것이다. 매매춘의 법정에서 ‘몸’과 ‘인간’은 검사와 피고의 관계로 전격적으로 충돌한다. 피고인 ‘인간’은 자기가 ‘몸’이라는 사실이 폭로되면 그동안 자기가 ‘몸’이 아니거나 ‘몸’을 초월한 것인 양 행세함으로써 이득을 취해 온 사기범으로 확정될 것을 두려워한다. 검사인 ‘몸’은 ‘인간’이 바로 그러한 사기범임을 끊임없이 주장한다. 당당하기 이를 데 없는 피고인 ‘인간’은 처음에는 윤리나 종교라고 하는 이름의 자기변호를 한다. 그러다가 급기야 국가의 공권력이라고 하는 변호사답지 않은 변호사를 대동하게 된다. 

‘인간’은 ‘몸’이라고 하는 자신의 실재성의 기반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원초적인 향수를 벗어날 수 없다. 에로티시즘은 인간이 몸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이른바 ‘합법적인’ 연애와 결혼에 의한 에로티시즘은 ‘합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매매춘이 ‘인간’을 위반하고 ‘몸’이 ‘인간의 실재’임을 드러낼 때, 에로티시즘은 원초적인 형태를 드러낸다.

몸의 특정 부위인 성기를 부려 돈을 버는 것과 몸의 특정 부위인 손을 부려 돈을 버는 것 간의 차이는 원초적인 에로티시즘을 생산해 내는 것과 은폐 내지는 위장된 에로티시즘을 생산해 내는 것의 차이다. 표면상 無償으로 거래되는 부부의 침실에서의 에로티시즘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원초적인 에로티시즘을 위장된 에로티시즘으로 변형시키는 매개다. 또 ‘몸’의 관점에서 보면 위장된 에로티시즘을 벗어나 원초적인 에로티시즘으로 눈길을 돌리게 하는 매개다.

몸을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은 몸이고자 하고, 몸이고자 하는 인간은 몸을 벗어나고자 한다. 그리고 매매춘은 몸과 인간 간의 존재론적인 역리를 노현하는 지대다.  

조광제 / 서울산업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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