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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전쟁의 포르노그라피
문화비평_전쟁의 포르노그라피
  • 김용규 부산대
  • 승인 2004.06.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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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보도에 따르면, 린다 잉글랜드 일병은 버지니아 주 포트애시비 출신으로 그곳 시골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대학 진학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고자 군입대를 지원했다고 한다. 특히 군인이 되기 전 그녀는 월마트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자랑스런 직원으로 뽑힐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벌거벗은 채 공포에 질린 이라크 병사들의 드러난 성기를 향해 빈총을 겨누거나 이라크 병사의 목에 줄을 달아 개처럼 끄는 시늉을 하는 모습이 찍힌 그녀의 사진은 월마트의 친절했던 직원으로서의 린다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충격 그 자체였다. 마치 한나 아렌트가 나치수용소 아우슈비츠의 살인마 아이히만이 법정에 섰을 때 그가 너무나 왜소하고 평범한 인간이라는 데 충격을 받았던 것처럼, 지금은 미국의 치욕의 상징이 돼버린 그녀도 한 때는 미국의 영웅이 되기를 소망했던 평범한 미국인이었던 것이다. 

린다는 善을 가장한 몹쓸 악녀였을까. 아니면 우리 안의 파시즘처럼 그녀 안의 인종차별주의와 유럽중심주의가 낯선 이슬람세계의 ‘인간 이하’로 간주되는 존재들 앞에서 표출된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순진하고 다정다감한 한 여성을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잔인한 악녀로 변하게 만든 것일까. 우리는 일차적으로 그 책임을 린다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인간은 거대한 파도 앞에 휩쓸리는 무기력한 존재로 간주됨으로써 정작 린다 일병의 책임과 자율성은 은폐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린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분명한 이유는 바로 벌거벗은 이라크 병사들을 바라보며 외설적인 희열의 표정을 짓는 그녀의 너무나 태연한 모습 때문이다.

하지만 친절한 린다가 그렇게 변한 책임을 그녀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인간의 정체성은 사회의 문화적이고 상징적 질서 속에서 구성된다. 인간은 바로 그 상징적·문화적 질서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 위치에 수반되는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비로소 모종의 정체성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그 본성은 그가 사회적 질서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한다. 월마트의 직원으로서의 그녀와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여 아브그라이브교도소의 교도관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그녀는 그 위치와 임무의 수행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린다를 악녀로 만든 것, 즉 그녀로 하여금 이라크 포로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게 하고 그들에 대해 외설적인 희열의 표정을 짓도록 만드는 위치와 임무를 부여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명분 없는 전쟁이며, 이 전쟁을 통해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미국이라는 국가인 것이다. 린다라는 한 인간을 군인이라는 주체로 ‘호명’하는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법의 이면에 사회적 초자아의 외설적인 향락이 자리하고 있다는 통찰을 제시한 이는 동구지식인인 슬라보예 지젝이다. 그는 국가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엄격한 공적 법과 은밀한 외설적 향락이라는 두 측면을 갖고 있으며, 낮의 법인 전자는 밤의 법인 후자에 의해 지탱된다고 말한다. 군대의 준엄한 법과 엄격한 규율이 병사들 간에 주고받는 외설적인 농담과 하급자를 성적으로 모멸하는 외설적 희열에 의해 지탱되듯이, 그리고 일본제국주의의 군대가 엄격한 군율과 통제를 필요로 하는 전쟁의 와중에도 곳곳에 위안소를 만들어 여성들을 병사들의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처럼, 린다의 외설적 미소는 바로 정의와 인권을 명분으로 내세운 미행정부의 또 다른 이면인 것이다.

미행정부가 정말로 당혹스러워 하는 것은 성고문과 성적 학대라는 외설적 사건 그 자체보다는 드러나지 말아야 할 외설적 이면이 백일하에 드러난 사실일 것이다. 지젝은 이미 고문사건이 터지기 전에 쓴 ‘이라크’에서 ‘그들 중 일부는 인간의 존엄성을 너무도 사랑하는 나머지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라면 (인간 존엄성의 궁극적 몰락인) 고문이라도 합법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쓴 바 있다. 이 탁견은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린다의 성고문과 그녀의 외설적 미소는 전쟁의 예외적 사태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의 메커니즘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지금은 악녀로 취급당하는 린다 일병이 과거에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명분 없는 전쟁의 메커니즘이 평범한 인간조차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성고문을 즐기는 린다 일병의 외설적 미소가 아니라 그 미소의 이면에 명분을 잃고 미쳐 날뛰는 전쟁의 외설인 것이다.

김용규 / 부산대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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