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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새 經筵을 차릴까?
대학정론-새 經筵을 차릴까?
  • 김신일 논설위원
  • 승인 2004.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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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논설위원 / 서울대 ©
“전하께서는 말씀은 겸손하게 하시나 공론을 좇지 않으시며, 나만 옳고 남은 그르다 하시니, 이는 남들이 나보다 못하다고 여기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신이 적이 답답하옵니다”. 이율곡 선생이 1573년 늦가을 어느 날 선조 임금 經筵에서 훈계하는 말이다.

율곡은 선조 6년 홍문관 직제학에 임명됐으나 사양하며 고향에 머물러 있었으나, 다시 임금이 세 번이나 부르니 더는 거역하지 못하고 직책을 맡는다. 그는 임금을 가르치는 경연관을 담당한다. 선왕 명종 때에도 경연에 참여하여 ‘맹자’ 등 경전을 강론했었다. 

왕조시대에는 임금이 국가의 주권자로서 국정의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었으므로, 덕스럽고 유능한 군왕으로 교육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국가의 과업이 아닐 수 없었다. 군왕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도 가지고 있었다. ‘국가론’은 플라톤이 구상한 국가지도자 교육론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처럼 확립된 군왕교육제도를 오랫동안 유지하며 철저히 시행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옛날에도 군왕들이 공론을 존중하지 않고, 배우는데 성실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백성과 신하들의 말에는 들을 만한 것이 없고 자기 판단이 옳다고 믿어, 자기주장을 강요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율곡이 임금을 훈계하고 있는 것이다. 율곡은 이어서 이렇게 타이른다.

“옛 성인도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 꼭 자기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한 마디의 선으로도 스승을 삼는 고로, 꼴 베는 사람의 말도 성인은 택하는 것입니다. 임금이 높은 자리에 앉아서 스스로 지혜롭다 생각하면 좋은 말이 어디로 들어가겠습니까. 반드시 두루 듣고 널리 물어서 선한 것을 택하여 받아들여야, 뭇 신하가 다 스승이 되고 뭇 착한 것이 임금 한 몸에 합하여 덕업이 넓어질 것입니다.”

어찌 임금뿐이랴.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지도자들은 국민을 계도하려고만 들고,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 대다수도 항상 스스로 교육자로만 자처한다. 자신도 학습자라는 사실은 자주 잊는다.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가르치려 들고, 남들로부터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알 것을 다 안다는 환상에 빠져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한가지 절실한 일은 ‘지도자가 가르치는 사회’로부터 ‘지도자가 배우는 사회’로 전환하는 일이다. 지도자라는 사람들 모두 모아서 새로 경연이라도 차려야하지 않을까.

김신일 논설위원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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