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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못자리론
대학정론-못자리론
  • 김신일 논설위원
  • 승인 2004.05.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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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못자리 만드는 논 옆을 지날 때 문득 떠오른, 어린 시절에 듣던 할아버지의 투박한 말씀이다.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한 농사꾼이었고 어려운 가세를 일으키셨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남의 못자리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내 논의 못자리는 물이 마르고 흙이 굳었다고 해서, 남의 못자리에서 모를 키워다 심는다. 수로를 내서 물을 끌어오고 쟁기질로 못자리를 다듬을 생각은 하지 않고, 우선 먹기는 곶감이 좋다고 남의 못자리에 의존해서 인재 농사를 짓고 있다.

국내의 기업들은, 잘 나가는 대기업일수록 외국 유학 석사, 박사 채용에 열을 올린다. 채용공고도 하지 않고 외국 현지에서 스카우트한다.  대학들도 외국 대학 박사들을 주로 교수로 채용한다. 연구기관들도 외국 유학파를 전적으로 선호한다.

해외유학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자, 기업이 설립한 장학재단들이 해외유학생 지원을 국가에 대한 공헌사업으로 추진한다. 자연히 우수한 인재들이 흘러나간다. 정부도 오래전부터 전액 지원 해외 유학생을 선발하여 외국 대학으로 보내고 있다. 이공계에 대하여는 더욱 힘을 쓰고 있다. 몇 몇 대기업은 사원 재교육을 위해서 수십 명 씩 선발하여 외국대학 MBA과정에 직접 유학시킨다.

이런 해외유학 바람은 개인들을 자극하여, 조기유학으로까지 번져서 유학은 이제 하나의 국가적 현상이 되었다. 해외 유학과 연수를 위해서 유출되는 외화가 연간 약 2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국가에 치명적인 것은 외화수지 적자가 아니다. 국내 교육기반의 붕괴이다. 고등교육뿐만 아니라 중등교육도 영향을 받고 있다. 고급전문가를 해외에서 양성하는데 국내 양성체제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 첨단과학기술의 자립은 한마디로 불가능 하다. 국내의 교육인프라가 취약했던 1970 년대 까지는 해외양성이 불가피 했으나 이제는 아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당장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인재를 외국 대학에 유학시키는 ‘유출장학’으로부터, 국내 수학을 지원하고, 나아가 외국인재를 국내 대학으로 끌어들이는 ‘유치장학’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생 뿐 만 아니라 우수한 외국학자들의 초빙도 도모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야하고 기업도 협력해야 한다. 대학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 못자리를 키워야한다. 인재 못자리를 남의 나라에 의존하고서도 앞서가는 나라가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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