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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중국 미래 세대가 집단최면에 빠진다면?
[대학정론] 중국 미래 세대가 집단최면에 빠진다면?
  • 교수신문
  • 승인 2020.11.1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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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교 성균관대 초빙교수·언론학 박사

 

올해는 6·25전쟁 발발 70주년 되는 해. 중국은 ‘항미원조전쟁(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운 전쟁)’ 기념일로 정한 10월 25일을 전후해 대대적인 선전 활동을 벌였다. 중국 공산당 주도 아래 애국심을 자극하는 행사와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도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이 내보낸 장편 다큐멘터리 두 개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CCTV-1(종합채널)에서 방영한 ‘평화를 위하여’ 6부작, 다른 하나는 CCTV-4(국제채널) 전파를 탄 ‘항미원조 보가위국(미국에 맞서 북한을 돕고 가정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킨다)’ 20부작이었다.


둘 다 지난달 중순 저녁 8시 황금시간대에 방송을 타기 시작했는데 6부작은 하루 두 편씩 3일 만에 끝났다. 20부작은 원래부터 있던 ‘국가의 기억’이라는 다큐 프로그램 방송 시간에 편성돼 하루 30분씩 이달 초까지 계속됐다. ‘평화를 위하여’ 시리즈는 첫 편에서 “항미원조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정의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라며 “중국인민지원군의 힘의 원천도 바로 정의”라고 강조했다. 


그 논리는 이렇다. 중국은 항미원조전쟁을 ‘미국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으로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제의 침략이 확장되는 것을 막은 전쟁은 정의롭다는 것이다. 중국인민지원군이란 이름에는 정의로운 전쟁에 자원한 군대라는 뜻이 담겨있다. 그들이 외치는 항미원조정신도 간단히 말하면 미제에 당당히 맞서는 정신이다. 이에 따라 6·25전쟁 또는 한국전쟁은 항미원조전쟁과 구분된다. 6·25전쟁은 1950년 전쟁 발발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까지를 가리킨다. 그러나 항미원조전쟁은 인천상륙작전 뒤 북한군이 연일 패주하던 상황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이 북한 땅에 잠입한 1950년 10월 19일부터 시작된다. 


중국이 항미원조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하는 건 북중 접경 가까운 곳까지 북한군이 밀렸던 전세를 인민군의 참전으로 뒤집었다는 점에서다. 그러지 않았다면 미군은 북한에 이어 중국 동북지역까지 침략했을 거라고 줄곧 주장한다. 항미원조전쟁 기념일은 첫 전투인 ‘양수동 전투’에서 인민군이 승리한 날이다. 양수동은 평안북도 운산군에 있다. 북진하던 한국군 6사단 2연대 선두 부대가 인민군 매복 공격에 무참하게 당했는데 당연한 결과였다. 선전포고도 없이 어둠속에 압록강을 건넌 인민군 20만 명은 그로부터 6일 뒤까지 감쪽같이 노출되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CCTV 다큐 시리즈가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엄연한 사실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침을 자행한 북한을 도운 게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미제의 침략’이라는 전제를 깨버리면 70년 동안 외쳐온 ‘정의로운 전쟁’을 폐기해야 할 판인데 어쩌란 말인가. 시진핑 주석도 지난달 23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항미원조전쟁 7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이러한 기조를 이어갔다. “위대한 항미원조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을 막아냄으로써 신중국의 안전을 지키고 중국 인민의 평화로운 생활을 보호하고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고……”

    
중국의 6·25전쟁 관련 역사 왜곡은 사실 뿌리가 깊다. 전쟁 시작 이틀 뒤인 1950년 6월 27일 당 기관지 인민일보 사설 첫 줄은 깜짝 놀랄 정도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승만 괴뢰군의 대규모 공격을 받아 이에 반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조선에서 전면적인 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지금은 북한의 남침을 인정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미제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단순히 역사 인식만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중국 당국의 애국주의 일변도 교육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중국인에게는 자신을 객관화시켜 보는 안목이 부족한 편이다. 통제된 언론 환경 탓이다. 체제 특성상 최고 지도부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한 목소리를 낸다. 민족주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인터넷 민족주의도 그 한 예다. 중국의 미래 세대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집단최면상태에 빠진다면?   

정원교 성균관대 초빙교수·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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