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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장애학생을 우선하는 대학교육
교수논평-장애학생을 우선하는 대학교육
  • 김병하 대구대
  • 승인 2004.04.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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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하 / 대구대 특수교육학부 교수 ©
지난 4월 20일은 5공화국 때 정한 장애인의 날이다. 이날이 되면 장애인을 위한 일회적 행사들이 관례적으로 행해지고, 언론매체에서는 기적적으로 장애를 극복한 소위 성공한 장애인 사례를 다투어 홍보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기념식 행사장에 나가지도 못하고, 무슨 표창을 받거나 성공한 장애인 대열에 끼지 못한 채 언제나처럼 집안에 틀어박혀 공허하기 짝이 없는 ‘장애인의 날’을 보낸다. 이미 장애인계에서는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바꿔 부르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5학년부터 장애학생들에게도 고등교육의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소위 ‘장애인특례입학제도’를 도입하여 정원 외로 10%범위 내에서 장애학생을 모집할 수 있게 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대학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장애학생을 받는 것이 부담이 되어 이 제도를 외면했다. 그러나 대학교육을 받고자 찾아오는 장애학생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까지 대학에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어서, 지금은 많은 대학에서 장애학생의 입학을 허용하여 그들에게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장애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열어놓아 대학에서 장애학생이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교육받을 수 있는 ‘통합교육’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행•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더욱이나 물리적 통합에도 불구하고 장애와 비장애의 이분법적 벽이 두텁게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아주 달라진다. 교육이란 무작정 하기만 하면 하지 않는 것보다 반드시 좋은 게 아니다. 자칫하면 교육의 역기능이 순기능을 능가해, 차라리 하지 않느니 보다 못할 수도 있다. 특히, 장애학생의 교육은 세련되고 따뜻한 배려가 넘치는 품격 높은 교육일 때만 ‘교육적’일 수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구대는 전국적으로 장애대학생이 약 3백명 이상으로 가장 많이 수학하고 있는 대학이다. 또, 객관적으로 장애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잘하고 있는 대학이라고 ‘최우수’ 평가를 받은 대학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대학에 다니는 장애학생을 붙잡고 “지금 당신의 대학생활은 행복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라고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장애학생 개인이 구체적으로 겪는 ‘차별’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특수한데 있다. ‘장애’에 따른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내밀하고 특별한 문제이다.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음성 혹은 점자교재 제공,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수화통역사 배치와 노트대필 서비스, 지체부자유 학생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 제공 등은 극히 기본적인 지원에 불과하다. ‘장애’는 결코 개인이 지닌 병리적 문제로 개인에게 환원 지울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장애의 문제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적으로 부단히 ‘재생산’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참으로 인간미 넘치는 감동적인 교육을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장애학생들이 심정적으로 차별을 느끼지 않고, 당당하게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는 상호소통적 교육공동체가 창출돼야 한다. 장애와 비장애가 하나되는 대학문화를 통해, 물고기가 물에서 놀 듯 장애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자기를 실현해 갈 수 있을 때, 대학다운 대학이라 할 수 있다. 장애학생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포근한 인간적 배려 속에 자존심을 살려가며 공부하는 대학은 필경 우리 모두에게도 가장 좋은 대학이다. 우리는 ‘특수성’에 대한 치밀한 배려를 통해 ‘보편성’을 정당화 할 수 있다. 오늘날 교육에서 통합(inclusion)이 강조되고, 환경접근에서 보편적 설계(universal design)가 강조되고 있음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유경쟁과 다중의 합리를 앞세워 마지못해 입학은 시켰지만, 장애학생을 ‘귀찮고 피곤한 존재’로 인식하는 한, 장애학생은 그런 대학에서 언저리의 국외자로 남을 뿐이다. 대학에서부터 ‘장애인 먼저’를 구체적으로 실천해갈 때, 대학문화가 더욱 향기롭고 품위 있게 정립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장애학생의 교육권을 우선하는 일에 적극 나설 때, 마침내 세계적으로 ‘교육력’을 자랑하는 대학으로 부활할 수 있다.


김 병 하 대구대 특수교육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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