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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능력주의는 제대로 작동되는가
[원로칼럼] 능력주의는 제대로 작동되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20.10.1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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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불평등한 삶 대물림에 일조하는 잔인한 매개체
정의는 말로만 외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 따라야

1967년 미국의 블라우(Blau)와 던컨(Duncan) 등의 연구는 능력 요인인 본인의 교육수준이 자신의 직업 지위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임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그와 유사한 시기의 연구들 역시 결론은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의 교육수준이나 직업은 자식의 지위획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들의 연구 모형을 적용한 1980년대 우리나라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개인의 지적 능력이 사회적 성공을 좌우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열악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개천에서 용 난다’는 희망을 제공하는 근거가 되었다. 능력주의는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능력주의가 허구라는 주장들이 등장하면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되었다.  

‘능력주의(meritocracy)’란 말은 1958년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능력주의의 등장(The Rise of the Meritocracy)』이라는 풍자소설에서 처음 사용했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결정되는 사회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이다. 마이클 영은 ‘지능+노력=능력’을 모토로 삼는 능력주의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 지능과 능력이 사회의 원리가 된 2034년 미래의 영국에서 계급화가 고착되며 폭동이 일어나는 사회를 그렸다. 

스티븐 맥나미(Stephen J. McNamee)와 로버트 밀러 주니어(Robert K. Miller Jr.) 역시 2013년에 출간한 『능력주의는 허구다(The Meritocracy Myth)』라는 책(3판)에서 능력주의가 말뿐이라는 것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지적했다. 그들은 21세기 능력주의가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부모의 특권이 자식들에게 상속하는 것이 먼저고 개인의 능력은 그다음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교육은 사회에 존재하는 기존의 불평등을 반영하고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심화시켜 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불평등한 삶을 대물림하는 데 일조하는 잔인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도 했다. 자식들이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사회·문화적 자본 등을 통해서 ‘만들어진’ 능력으로 살아가고, 그것이 그 후의 세대에도 대물림됨으로써 능력주의는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문화자본·사회자본 등의 상속이 개인의 능력보다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하는 데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요즘 ‘아빠 찬스’에 이어 ‘엄마 찬스’란 말이 유행되고 있다. 이것은 부모의 능력이 자식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는 데 유효하게 작용하는 것을 꼬집는 말이다. 능력은 없으나 부모 덕분에 대학에 입학하고, 장학금도 받고, 고등학생이면서 논문의 제1 저자가 되고, 군 복무 중 휴가가 종료되었는데도 전화(구두)로 휴가를 연장하는 것과 같은 사례는 부모가 힘이 없는 사람들에겐 꿈도 꿀 수 없는 딴 세상의 일들이다. 대학에 합격하고, 장학금을 받고, 논문을 작성하는 것 등은 표면적으로 볼 때는 개인의 능력의 결과다. 실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력으로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능력이 없는 사람이 부모나 지인(知人)의 힘으로 그러한 일이 성취되었다면 그것은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 비능력적 요인이 된다. 기업 등에서 채용 공고가 나오지만 내정자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개 경쟁 시험에서 문제가 유출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면 시험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논술·종합생활기록부 및 각종 스펙에 의해 평가되는 대학입시 역시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다. 최근 특정 대학 교수 공개채용 과정에서 벌어진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해 고발한 사건을 접하면서 대학도 별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세상은 요지경’이다.  

사람들은 본인보다 자식 세대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자신은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자식들은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들의 공통적인 심정이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대물림된다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무너지게 된다.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는 사회적 상승이동이 가능한 사회다. 개인의 땀의 결실이 제대로 평가받는 사회를 이른다. 노력하면 누구나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중산층 혹은 그 이상으로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갈망하는 정의로운 사회다.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때 정의사회로 가는 길은 넓어진다. 정의는 말로만 외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 따라야 한다. 공자가 던진 “의롭지 못한 부귀함은 뜬구름과 같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차갑부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시인·교육학박사   
차갑부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시인·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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