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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자존심의 회복
학이사: 자존심의 회복
  • 박돈희 전남대
  • 승인 2004.03.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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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돈희 전남대·화학공학

올해로 대학강단에 선지 26년이 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교수생활이 고단해지는 것을 모든 교수들은 피부로 실감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옛날 같으면 교수가 지도하는대로 쫓아 대학을 마친 제자들이 산업역군이 되어 우리나라 GNP를 일만불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GNP 일만불이 된지도 벌써 8년이 넘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뿐이다.

산업사회를 넘어 정보화사회로 변천되면서 모든 분야가 IT를 이용한 생활이 되고 있다. 많은 교수님들의 누런 노트 즉, 빛 바랜 강의노트가 학생들에게 눈총을 받는다고 생각해 첨단기법의 하나인 OHP필름이나 프로젝트를 이용한 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학생들도 멋지게 나오는 교재내용과 천연색의 화면을 보면서 교수와 학생간의 강의자료에 대한 시비는 크게 일어나지 않는 듯 하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실제로 교육효과를 기대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학생들에게 빈축을 사지 않을 방법에 지나지 않을 때가 있다. 최고의 능력을 소유한 교수님이라도 자료를 영화같이 만들어 단시간 안에 학생들 머릿속에 기억하도록 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가장 강의를 잘하시는 은사님 중 한 분이신 김우식 교수님을 기억하고 있다. 대학원 시절에 교수님들 연구실을 정리하는데, 김우식 은사님께서 버리시는 '단위조작' 강의노트를 호기심에 얻어 가지고 와서 지금도 가끔 그 은사님의 강의노트를 들쳐보곤 한다.

30년 전의 교재란 모두가 영어로 돼 있어 교수님의 흑판노트나 설명을 부지런히 메모해야하는 시절이었다. 참으로 명필로 쓰여진 노트에 그림까지도 자세하게 주석이 달려 있었다. 나는 같은 강의를 하는데도 그렇게 준비를 못하는 것을 보면 때때로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 배울 때도 그러했고, 가르칠 때도 그랬으니 참으로 후학을 가르친다는 것이 민망하기 그지  없다.

강의의 효과를 생각할 때 양과 질이 모두가 적정한 규모와 규격이 있을진데, 많은 기업체들이 대학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졸업했는지 모르겠다며 대학과 대학교수를 나무라고 있다. 그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옛날식의 대학은 글자그대로 큰 것을 배우러 온 것이지 취직을 바래고 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대학과 대학원생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대학사회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 사이에 난기류가 형성됐다. 대학은 이제 취직의 도구가 된 듯 하다. 도구라면 보다 유능하고 철저한 도구가 돼야 함에 틀림없다. 그러나, 10년 전에 비해 현재 졸업생들의 실력은 월등하게 좋아진듯하나 취직문은 바늘구멍이 아니라 아예 구멍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졸업 후 도서관과 취업학원을 전전하는 제자를 보면서 대학이 이대로 되는가 되묻게 된다. 누구의 책임이랄 것도 없다. 시대가 그렇게 되고 있으니 말이다. 학문으로 우뚝 서는 후학이나 제자들을 보고 싶은데, 너무 세태에 물든 모습을 보는 것도 안타깝다. 점점 어려운 사업은 외면하고, 쉬운 사업과 편한 직업을 찾게 되는 현실이다. 일본의 학자들은 가난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이만불시대에서 갈지자를 걷더라도 크게 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학문의 道를 철저하게 지키며 걷고 있는 모습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대학사회는 앞으로 여러 면에서 극복할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것이 대학교수의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일일 것이다. 대학과 대학교수는 그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보루이다. 대학의 투자가 초등학교 투자만도 못한 국가라면 어떻게 고고한 선비를 기대하겠는가? 대학건물 건축 평당비용이 서울 강남지구 아파트 평당비용인 천만원을 넘을 때 그 속에서 연구하고 생활하는 모든 대학인이 미래의 우리사회를 진정으로 걱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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