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8-12 11:19 (수)
[학문후속세대의 시선]또 하나의 열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또 하나의 열매
  • 교수신문
  • 승인 2020.06.30 17: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인생에 모토는 성경의 요한복음 12:24절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고3 여름부터 나는 인생의 깊은 허무함에 빠져 방황하였다. 죽으면 끝나는 인생을 아등바등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자, 그 어떤 것으로도 이 결론을 뒤집을 수가 없었다. 대학에 와서도 이런 허무함 때문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도 전혀 알지 못했고, 교회도 다니지 않았던 나에게, 요한복음 12:24절 말씀이 주는 충격은 매우 컸다. 나를 살게 하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자기 목숨을 희생하셨다는 사실이 믿어지고, 그 희생의 가치가 얼마나 큰가에 눈을 뜬 이후 지금까지, 나는 삶에서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고, 전하려 하고 있다. 자기를 희생하여 많은 생명을 살게 한 예수님의 삶은 방황하던 내 인생의 전환이며 방향이 되었다.

자기를 희생하여 생명을 살게 하는 ‘한 알의 밀알이 주는 진리’는 학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시절 나는 의욕만 있었지 공부의 기본 자세가 부족했다. 학점도 높지 않았고, 연구의 경험도 없었다. 이런 내가 현재 대학 캠퍼스에서 학문후속세대로서 연구와 교육의 한 축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나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는 한 알의 밀알처럼 자기를 희생하신 훌륭한 스승님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석사 시절 스승이셨던, 엄영익 선생님은 처음에 무섭고 엄한 분처럼 여겨졌다. 일주일을 꼬박 밤새우며 첫 번 세미나 발표를 준비했지만, 선생님의 한 마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고, 서서 울다가 자리로 들어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엔 제대로 준비했지 하고 서도 엄영익 선생님 앞에선 가장 기본적인 맞춤법부터 시작해 내용적인 큰 허점까지 모두 발가벗겨졌고, 불호령이 내렸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는 참 손이 많이 가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엄영익 선생님은 이런 나를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그리고 엄하게 훈육하셨다. 석사 마지막 때엔 내가 졸업과 관련한 치명적인 잘못을 하였는데, 이를 책임지고 바로잡아 주시고 졸업을 시켜주셨다. 엄하지만 인자한 아버지처럼, 학문에 있어서 한 알의 밀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고 내게 학문의 생명을 주신 엄영익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내가 학문후속세대가 되기까지 인도하여 주신 또 한 분의 스승님은, 내 박사과정을 지도하신 이지형 선생님이다. 이지형 선생님은 친근하면서도 모르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큰 형 같은 분이셨다. 무턱대고 찾아가 박사과정 진학을 여쭈어보았을 때,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하신 것이 기억난다. 이지형 교수님은 내가 자립적이고 주도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시면서도 연구의 완성도가 높아지도록 끈질기게 검증하는 것을 알려주셨다. 무엇보다 늘 자기 시간을 내어 연구와 삶의 문제들을 상담을 해주셨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 결과 자신이 성장해간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도와주셨다.

학문후속세대로서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스승님들이 한 알의 밀처럼 희생하신 결과임을 깨닫는다. 이 사랑과 희생을 받은 자로서 나도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거룩한 압박(?)을 느낀다. 현재의 부족함을 핑계하지 말고, 나도 스승님들의 삶을 본받아 한 알의 밀알처럼 학문과 인생의 씨를 심고,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는, 조금 부담은 되지만 가슴 설레는 삶을 살아가야겠다.

 

 

 

 

 

 

 

 

김재광

성균관대학교에서 인공지능을 전공으로 박사를 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소속 강사로 인공지능 관련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