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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부대낌 속에서 얻은 보람
학이사: 부대낌 속에서 얻은 보람
  • 김창남 성공회대
  • 승인 2003.1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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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또 한 학기가 다 갔다. 채점을 하고 성적 평가를 하는 와중에 나는 또 하나의 일을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것은 학생들과 함께 책을 만드는 일이다. 이 일은 지난 봄 학기의 '특강' 과목에서 시작됐다. 한 학기 동안 열 분의 강사를 모시고 들은 현장의 이야기를 학생들 스스로 정리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어보자는 기획이다.

만화가 박재동, 배우 김명곤, 오마이뉴스 대표 오연호 씨, MBC 김영희 PD 등 문화계, 언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는 열 분의 강사들은 각각의 분야에서 현재의 위치에 오기까지 겪었던 도전과 좌절, 고난과 극복의 경험을 중심으로 각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어떤 자질이 필요하고 그 자질을 갖기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해 줬다.

머지 않아 대학문을 나서 험한 사회로 나가 숱한 도전과 역경을 마주해야 할 학생들 입장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열 분의 선배를 통해 평소 강의실을 통해 만나는 교수들로부터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진짜 현실의 이야기, 피가 튀기고 곳곳에 살얼음판이 즐비한 저 정글 속의 살아 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이 강의는 철저하게 학생들의 참여를 통해 진행되었다. 우선 학생들은 각자의 관심과 희망에 따라 4-5명씩 팀을 구성해 강의를 듣고 싶은 전문가들을 스스로 추천하고 선택했다. 강사에 대한 섭외 역시 학생들 스스로 해내야 했다. 학생들은 강연에 앞서 강사들을 사전 인터뷰해야 했고 이를 토대로 강사에 대한 비디오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학생들은 자료를 모으는 데서 시작해 촬영, 편집, 대본 작성, 나레이션에 이르기까지 함께 해내면서 공동 작업의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제작된 10분-15분 가량의 다큐멘터리는 매회 강연 시작 전에 상영됐다. 그 가운데는 아마추어의 작품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도 있어 강사들을 놀라게 했는데 이건 지도교수로서 대단히 뿌듯한 경험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해내는 한 편으로 학생들은 강연의 '흥행'을 위한 홍보전을 펼쳐야 했다. 강연이 회를 거듭할수록 갖가지 홍보 아이디어들이 속출했는데 나로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홍보 아이디어 경쟁을 지켜보는 것도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강연 원고를 녹취하고 정리하는 일을 진행했다. 학기말까지 학생들은 일차 강연록을 정리했는데 이 일은 이후에도 몇 번씩 수정을 거치면서 반복됐고 결국 또 한 학기를 훌쩍 넘겼다. 많은 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 탓에 최종 원고가 정리되기까지 적지 않은 기간이 걸렸지만 원고를 정리하고 편집하고 제목을 달고 하는 과정이 학생들에게 또 다른 훈련의 기회가 된 것은 물론이다.

강단에 서면서 나의 강의가 학생들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현실의 도전에 얼마나 유용한가 하는 의구심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그저 책상물림에 지나지 않는 나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메울 수 없는 부분을, 현장의 전문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얼마간이나마 채워줄 수 있다는 점에서 '특강'은 대단히 의미있고 유용한 방법이다.

지금 나는 학생들이 정리한 원고를 마지막으로 수정 보완하는 일에 매달려 있다. 나로서는 가외의 일인 셈이지만 학생들과 함께 부대끼며 만들어낸 한 학기 강좌의 성과가 책으로 엮여 나오는 보람은 어떤 수고든 상쇄하고 남을 만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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