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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방의 여섯가지 오류
교육개방의 여섯가지 오류
  • 주경복 건국대
  • 승인 2003.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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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주경복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대표, 건국대 교수)

정부가 '외국교육기관 설립·운영 기본계획 및 특별법 제정안'을 발표했다. 그 핵심은 사립학교법이나 교육관련 법률 제약을 뛰어넘어 외국인학교가 국내에서 마음껏 교육활동을 벌이고, 특정 내국인도 그런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 여론이 일자 최근에는 아예 찬반토론을 포기하고 찬성론자들만 모아 공청회를 열며 서두르고 있다. 이미 사교육 시장은 물론 공교육 부문도 외국인에 대한 문호가 대폭 열려 있고, 세계무역기구의 서비스무역일반협정에서 교육개방문제가 뜨거운 논란을 거듭해 오던 터에,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공세적으로 교육개방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진행되는 세계화는 각 국가나 지역이 자발적으로 원하는 만큼 ‘자율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협정’이나 ‘협상’이라는 명분 아래 개방과 교역이 사실상 강요되고 있다. 또 세계의 구성원 모두에게 골고루 행복을 주는 게 아니라 이른바 ‘20대 80’의 원리 속에서 강자의 논리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에 대해 ‘20%의 선택된 사람들에 속하면 된다’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교육문제도 그런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를 즉흥적 판단과 단순한 논리로 성급하게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원론적으로는 세계화의 흐름이 인류 공영에 반해 소수 강대국과 독점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라면, 맹종할 것이 아니라 약소국과 약자들의 권익을 지키며 흐름을 바꾸어 나가는 노력을 먼저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인간의 삶에 관련된 문제들, 예를 들어 교육, 문화, 예술 등을 시장과 상품과 돈의 논리, 다시 말해 경제논리만으로 풀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의 이번 특별법안 추진은 성급하고 본질을 벗어났다. 실제로 그것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첫째, 교육문제를 비교육적 동기에 너무 쉽게 연동해 단편적으로 접근했다. 경제특구 활성화에 도움 될지 모른다는 판단으로, 문제에 대한 진지한 연구 없이 교육을 마치 ‘끼워 팔기’ 상품처럼 활용하고 있다.

둘째, 외국학교 상륙이 국내학교를 자극하고 분발시켜 교육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충격요법에 대한 문제다. 한국 교육의 문제가 대학의 서열화 구조에 따른 입시위주의 교육과 공교육의 공동화 및 사교육 팽창에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외국 학교들이 들어오면 서열이 파괴되기보다 외국학교의 특별한 조건을 이용하며 외국학벌을 얻기 위한 또 하나의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공교육 전체의 정상화를 저해하고 더욱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교육개방이 국가의 교육적 정체성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고유한 전통과 주체적 창조성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교류하지 못하고, 외국적 요소로 일시적 필요를 채워나가다 보면 스스로의 창조력은 상실되고, 정체성 없이 종속되거나 표류할 수 있다.

넷째, 국내 교육법을 초월해 외국학교에만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며 국내 교육의 자생력과 발전 가능성을 저해한다. 내외국 학교들의 공평한 법적용이 아닌 특별법의 배타적 특혜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국내 교육기관의 조건을 더욱 악화시키고, 외국교육기관의 방만을 초래할 수 있다.

다섯째, 소수의 내국인들에게 외국인학교 입학을 허용하는 특별법은 일반국민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특별한 교육'의 혜택을 받는 계층과 더욱 부실해진 '보통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계층 사이의 위화감을 증폭시킬 것이다.

여섯째, 무원칙한 교육개방은 가뜩이나 부풀어 오른 교육비 부담을 더욱 가중시킨다. 외국학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수익증대를 위해 고액의 등록금을 징수할 것이고, 그것은 국내 교육기관의 등록금과 물가체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결국은 국민의 교육비 부담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문제점을 통해 볼 때, 시장논리에 따른 맹목적 교육개방 정책은 근본적으로 수정돼야 한다. 특별법은 철회돼야 하고, 대안을 준비해 온 전문가와 단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원점에서부터 다시 교육의 본질적 발전을 위한 창조적 정책을 수립해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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