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5:15 (토)
학이사 : 내가 발견한 새로운 삶
학이사 : 내가 발견한 새로운 삶
  • 김기국 경희대
  • 승인 2003.12.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국 / 경희대, 프랑스어과

2003년을 떠나보내는 12월, 갑자기 거세진 찬바람을 맞으며 대학에 첫 발을 디뎠던 1996년으로 눈길을 돌려본다. 당시에도 순수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 처한 위기와 인문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무에 대한 언급은 요즘과 유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니 학생들에게 문학, 그것도 프랑스 시를 가르쳐야 했던 현실은 결코 수월치가 못했었다. 시 강의를 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이 시대에 시가 갖는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 자문하곤 했었고, 그럴 때 나는 학생들에게 내 유학생활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곤 했다.

프랑스 유학 초기 나의 생활은 공부 이외의 실생활의 경험과 문화적인 체험을 허락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프랑스의 모습들은 나에게 피상적으로만 다가왔고 가까이 접했던 프랑스인들에게서 찬란한 문화를 이룩한 민족의 면면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프랑스와 프랑스인들에 대한 실망과 회의 그리고 의구심을 품은 채 생활하던 중, 1995년 초겨울의 파업은 내게 새로운 계기가 됐다. 오랫동안 파업이 계속되어 고충이 말이 아니었음에도 프랑스인들의 대부분은 파업노동자에 대한 적의나 분노, 그리고 불평을 표현하지 않았다. 바로 이들에게서 나는 프랑스의 진정한 힘과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프랑스에 대한 나의 생각은 크게 바뀌게 됐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나의 생활은 도서관의 책 속에 파묻힌 추상적이고 경직된 것에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현실과의 밀접한 연관성을 찾는 방향으로 이행된다.

사실 서정과 낭만이라는 선입견으로 읽혀지는 시에서 우리는 현실을 냉철히 투시하는 시인들의 위대한 감각을 깨달을 때가 많지 않았던가. 프레베르(J. Prevert)의 “아침 식사(Dejeuner du matin)”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남자가 아침에 일어나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시고는 그를 애타게 쳐다보는 여인을 뒤로 한 채 떠나가는 모습을 그린 시에서, 사랑의 열정과 이별의 회한도 없이 떠나가는 남자와 그의 냉정함에 오열하는 여인의 이별은 단순히 두 연인의 결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듯 시인은 마치 아침 식사처럼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연인 사이의 이별, 그 속에 담긴 사랑이라는 감정의 가벼움, 그리고 이를 통해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의 비정함을 통렬하게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에야 확신하는 것이지만, 1989년 어느 가을 아침, 박사과정의 화두로 시를 선택한 나의 마음속에는, 현실과 진실에 대한 끝없는 투쟁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했던 시인들의 정신이 중요하게 작용했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와 시에게서 느낀 체험을 통해 나는 오늘의 학생들에게 삶과 세상을 새롭게 보자고 이야기 한다. 시의 가치와 의미는 작품 그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어우러지는 시적 감동으로 극대화되며, 이 감동은 대중가요의 가사와 한 장의 사진, TV 드라마의 한 장면과 영화의 대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제안한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한 것을 듣는 것이 대학인의 혜안이다. 자, 이제 우리 모두 세상이라는 텍스트에 감춰진 보석을 찾으러 떠나자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