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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죽음보다 두려운 늙음
학이사: 죽음보다 두려운 늙음
  • 박승우 영남대
  • 승인 2003.11.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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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우/영남대 사회학

늦가을이다. 아침부터 비까지 내린다. 늦은 봄에 내리는 비는 고즈넉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만, 겨울 초입에 내리는 이 비는 마음을 을씨년스럽게만 한다. 이 비 그치면, 이제 곧 겨울이 문풍지를 때리는 바람을 이고 아랫목을 흔들 테고 또 한 해가 갈 터이다.

한 해를 두 ‘학기’로 사는, 우리들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는 것이 남들보다 더 빠르게 느껴지는 듯 하다. 10년 세월이래야 기껏 스무 학기이니, 지나온 10년을 돌이켜 학기로 나눠 세다보면 그야말로 세월이 나르는 화살이었음을 느낀다. 그러니 앞으로 다가올 10년, 또는 정년까지의 세월도 무상하기는 매일반이리라. 아니 인생 선배들의 말이 젊은 시절의 세월이 큰 강 흐르듯 여유롭게 흐른다면 중년을 넘어선 이후의 세월은 높은 계곡의 여울물 흐르듯 급하게 흐른다 하니, 오히려 앞으로의 10년은 한바탕 꿈결처럼 흐를 것만 같다.
  왜 뜬금없는 세월 타령이냐 하실 분도 있겠지만, 요는 세월이 흐르는 것이,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요즈음처럼 걱정되고 염려스러운 적도 없었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이다. 무슨 경박하고 희떠운 소리를 하느냐고 나무라시겠지만, 죽음보다도 오히려 늙어 가는 것이 더 두렵다. 부모님과 가까운 이들을 너무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내고 보니 죽음도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고, 흰소리 같지만 예전처럼 크게 두렵지도 않다. 오히려 정작 두려운 것은 요즈음에 들어와서 바로 이 시대 이 나라에서 노인이 돼 가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뭐 특별히 고상하고 운치 있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고,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양을 볼라치면 이런 타령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몇 가지만 들어보자. 우선 나는 우리 사회처럼 급속히 고령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내가 노인이 될 20년 뒤를 생각하는 것이 두렵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유엔이 규정한 ‘고령화사회’로 진입했고, 앞으로 20년 뒤에는 노인인구가 총인구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된다고 한다. 노인인구 대비 전체 노동력의 비율을 적절히 유지하자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수백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 와야 할 터이다. 이런 세상에서 노년의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신산한 일이 아니겠는가.

또 하나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노후 대책을 위한 여러 가지 연금이나 보험제도가 당최 믿을 만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 없고 경제 관념도 모자라, 받는 돈 안사람에 다 맡기고 주는 용돈 타 쓰는 나로서는 그때쯤 직장에서 나와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나로 하여금 죽음보다도 늙어 감을 더 두렵게 만드는 것은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다. 이 문제는 이제 더 이상 특정 시기의 일시적인 상황이 아니고 지식정보사회에 진입한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대와 30대의 실업률이 다시 오르고 있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부모에 얹혀 사는 젊은이들이 수두룩한 현실이다. 나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까 그게 두려운 것이다.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외롭더라도 추레하지 않게 늙고 싶은 것이 그리 과한 욕심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중?장년들에게 늙어간다는 것이 황혼으로 가는 편안한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그건 그렇고, 이 나라에서는 ‘정치’라는 걸 왜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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