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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교수와 미풍양속
대학정론-교수와 미풍양속
  • 김정근 논설위원
  • 승인 2003.1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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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지역 도시에서 있었던 어느 결혼식에 갔다가 서울에서 온 아는 교수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시간을 아껴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불과 반 시간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무려 10시간 이상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좀 의아한 생각이 들어 “뭘 여기까지 와야만 했는가”하고 물었다. 그는 조금 망설이더니 “그럼, 어쩌겠는가. 와야지….”라고 대답하며 묘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필 이 경우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결혼식장이나 상가 같은 데를 가보면 교수들의 얼굴이 보인다. 잠깐 보였다가 체면을 살린 후 눈치껏 사라지는 얼굴도 있고 진득하게 남아 넉넉한 마음씨를 자랑하는 얼굴도 있다. 소극적인 몸가짐이 있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쪽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미풍양속의 동원력이 미치는 범위는 아주 넓다. 친가, 외가, 처가의 여러가지 인간관계가 있고 직장동료, 학교 동문, 태어나고 자란 고향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다. 여기에 생일, 결혼, 상사, 제사, 입원, 합격, 당선, 취임 등의 길흉사를 모두 대입해 보면 동원의 무대 규모가 대강 드러난다.

교수라고 하여 미풍양속을 아주 비켜갈 방법은 없다. 우선 그것들은 사람이  만든 것이긴 하지만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 땅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으로서 그 위세가 당당하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적절한 수준에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 무난하고 안전한 측면이 있다. 역행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저간의 사정을 짐작해 알 수 있다. 당장 구설수, 비난, 배제, 배척이 따를 것이다. 심한 경우 정신이 올바르지 못하다거나 이상하다는 쪽으로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교수가 미풍양속의 동원력에 전적으로 순응했을 때 그것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또한 없을 것인가. 가령 정치, 경제,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는 다른 사람들과 손색없이 보조를 맞추려고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없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교수의 주된 관심은 생활세계 속에서 어떻게 능숙하게 사느냐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관찰하고 개념화 해내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수는 일상적 세계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것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교수는 이론가이면서 사색가이다. 바로 이점에서 교수직과 미풍양속은 반드시 조화스러운 관계에 놓인 것은 아니다.

교수직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교수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성립할 필요가 있다. 그랬을 때 미풍양속의 동원력이 횡포로 가는 것을 차단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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