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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정규직 교수의 '나눔의 미덕'
교수논평: 정규직 교수의 '나눔의 미덕'
  • 정성기 경남대
  • 승인 2003.11.10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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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기(경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

친구들을 만나면 누가 뭐래도 대학교수가 최고 직업이란다. ‘직업으로서의 교수’가 좋다고 여길수록 목에 걸린 양심의 가시가 찌른다. 대학생들의 취업난이 아프지만, 이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훨씬 적은 대학의 시간강사문제는 또 다른 가시다.

 

올해 봄에 일어난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의 ‘생계형 자살’ 사건을 접하고, 도정일 경희대 교수는 ‘한국대학의 최대 수치’라고 했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해결해야 하며, 교수 월급을 동결하거나 깎는 것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립대․사립대 교수협의회 등에서도 성명서를 발표하고, 더러는 청와대 앞 1인 시위도 하면서 강사들의 처우 개선과 법적 교원 지위 부여를 정부와 대학당국에 촉구했다.

 

그러나 올해도 저물어가는 지금까지 아무런 가시적인 진전이 없는 상태다. 교육부가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을 책정했지만, 지난달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확정 과정에서 전액 삭감해 버렸다. 최근의 재임용 탈락 교수 구제책도 강사들에게는 남의 일일 뿐이다. 강사문제를 해결할 능력의 열쇠는 누가 쥐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제 해결의 책임은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있지만, 문제 해결의 열쇠는 정부나 대학당국이나 재단이 아니라 사실은 ‘정규직 교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먼저, 정규직 교수들이 ‘강사’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시간강사’는 의대 인턴처럼 교수가 되기 위한 교육․훈련과정에 있고, 일시적인 과정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제 박사학위가 있는 강사 중에 전공에 따라서는 40대는 물론 50대에 이른 사람도 흔할 정도다. ‘강사’는 이미 직업화됐고, 강사문제는 점점 노동문제화 돼 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당연시되던 것들이 의문시되고 있다. 시간강사들의 방학 중 무임금 관행, 의료보험이나 가족수당, 퇴직금이 없는 관행 등은 그 일부다. 최근 한 대학 강사가 수 년간의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것은 시간강사문제가 노동문제화한 전형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강사들의 사회경제적, 교육적 지위 개선에 필요한 돈은 어디서 나와야 하는가. 학생들 등록금 올리는 것은 한계에 달했다. 재단이 책임감을 갖고 더 노력해야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역부족이다. 정부를 압박하지만, 나라살림 사정이 사상 최악인 것도 사실이다.

 

확실한 해결책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 정부는 강사처우 예산은 전액 삭감하면서도 내년도 공무원 보수는 3% 올리고, 추가 예비비도 2천억원 가량 책정하고 있다. 공무원인 국립대 정규직 교수부터 38만여 공무원이 내년도 보수를 인상하지 않고, 동결만 해도 수천억원의 재원이 생긴다. 정규직 교수들이 자신의 몫을 고수하며 정부나 재단에 대해서 비정규직 강사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현실성이 결여돼 있으며, 면피용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도 안고 있다. 대학 밖의 정규직-비정규직 문제 해결책도 사실은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미 봉급 삭감까지 감수하겠다는 교수도 있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도 최근 자신의 저서에서 같은 입장을 밝혔다. 아는 교수들과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 보면, 이런 ‘나눔의 정신’, ‘나눔의 미덕’이 없이는 ‘더불어 살기’는 불가능하다고 역설하는 교수들이 드물지 않다. 국립대․사립대 교수협의회, 교원연합회, 교수노조 등은 회원교수들의 미덕과 양식을 모아서 이제 ‘나눔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많이 가진 위에서 덜어 적게 가진 아래로 보태는 것’(損上益下)은 동서고금의 합리적인 사회경제적 갈등 치유책이다. 밑바닥 삶을 살면서도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동료에 대해 지극한 사랑을 보인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제 목숨마저 내놓은 것도 이즈음의 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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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일 2003-11-14 18:25:08
아! 우리나라에도 이런 열린 사고를 가진
교수님이 계셨었군요. 진심으로 존경합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