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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6)] 우리 시대의 불가능 - 불가능, 가능이 되다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6)] 우리 시대의 불가능 - 불가능, 가능이 되다
  • 장성환
  • 승인 2020.02.1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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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우리 어머니는 ‘마이카 시대’가 정말 올까 의심하셨다. 신문지상에 새해마다 떠드는 장밋빛 희망 가운데 하나가 마이카(my own car) 시대였다. 그러나 왔다. 자유롭고 싶었던 어머니는 용감하게 면허를 땄고 차를 사는 만행을 저질렀고(아버지 입장에서는), 마침내 몰고 다녔다. 어머니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버지는 그때 이렇게 말하셨다. ‘나는 군대에서 자동차 교관이었는데, 기계를 가르치는, 배우려다 한 번 혼나고 못했는데.’ 
이후 어머니 차는 자식 놈들의 전용이 되었고 교외로 이사 가면서 어머니가 우울해하시는 것 같기에 내가 소형차를 하나 사드리기로 맘을 먹었는데, 이곳저곳에서 소문을 듣고 원조를 해와 준중형으로 격상되었다. 그 차는 주행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겉모습은 정말로 엉망이었다. 주차하다 벽에다 긁고 눌리고 했으니 말이다. 나이가 들어 운전을 못하겠다 하시면서 나에게 그 차가 왔는데, 정말 부담 없이 좋은 차였다. 마일리지는 얼마 되지 않은 새 차지만, 겉은 정말로 부담 없었다. 그 차를 아직도 내 아들이 몬다. 
마이카처럼 나에게 불가능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충격은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이었다. 못 먹어 발육이 안 좋거나(우리 시절) 인종적으로 땅딸한(지금도 대략) 우리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을 하다니. 김연아의 고교시절 녹화를 보고 또 봤다. 되나, 되네, 어쩌지. 
‘우리 때는 말이야~’ 스포츠라는 것이, 맨손으로 하는 권투나 운동화만 있으면 하는 축구(펠레는 맨발이었지만) 그런 것이 전부였는데, 얼음판이 상시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은 쉽게 꿈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지방은 아직도 아이스링크를 구비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한국인이 피겨스케이팅을 하고 세계 1등을 한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미국의 역사에서 흑인이 대통령이 되리라는 것도 상상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어머니가 백인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아버지가 아프리카 출신의 유학생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최고의 로스쿨을 나왔다고 하더라도, 미국인이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으리라는 생각은 적어도 나의 시절에는 떠올리지 못했다. 
흑인 부인과 함께 권좌에 앉아있는 모습은 시대의 승리를 넘어 미국의 승리처럼 보였다. 미국의 개방성과 다양성 그리고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다녔던 하와이의 중학교를 버스 타고 지나면서 나는 경의를 표했다. 비주류 민족, 변방, 고립무원, 이상적이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난 오바마를 축원했다. 연구실 전화기 아래에 그의 만화 초상을 끼워놓고 늘 바라보았다. 기회의 나라, 자유의 나라, 평등의 나라, 그리고 단순한 기회균등(equal opportunity)을 넘어 ‘적극적인 조치’(affirmative action)를 바라는 나라, 나아가 ‘정치적 온당함’(political correctness)을 앞세우는 나라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떠올렸다. 
또, 상상도 못한 일이 한국 사람에 의해, 미국 땅에서 벌어졌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받은 것이다. 그의 넉넉한 넉살도 멋졌고, 제작자의 말도 요점이 있었다. 봉 감독은 술을 아침까지 마셔야겠다고 웃겼고, 투자자는 봉 감독의 헤어스타일과 자기 동생의 돈 그리고 한국 영화계의 땀에 영광을 돌렸다. 통역은 되지 않았지만, 제작자의 말처럼 역사적일 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엘리트의 유럽 영화와 대중의 미국 영화가 기생충으로 평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희한한 느낌이 들었다. 스크린 속에서만 본 배우들과 함께 봉준호가 있자, 그를 통해 나도 영화 속에서 보던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다. 무슨 이야기냐면, 스크린 속에나 등장하는 비실재적인 사람이 어느 한국인의 눈에 비친 진짜 사람으로 느껴졌다는 말이다. 오며 가며 내 옆자리에 언제나 앉을 수 있는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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