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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3) -대학교양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3) -대학교양
  • 교수신문
  • 승인 2020.01.2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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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서 ‘교양’하기, 그 어려움에 대하여
정세근 교수
정세근 교수
충북대 철학과

나도 참 할 일없다. 아직도 교양에 매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나름 신념이라고는 해도 육신이 고달픈 건 어쩔 수 없다.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학교는 전임교수가 교양과목을 한 과목 이상을 반드시 맡게 되어있었다. 그러니까 고전적인 철학개론을 ‘철학의 문제들’ 또는 ‘철학의 역사’라는 제목 아래 가르쳐야만 했다. 

나름 재미있었다. 철학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 철학의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서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즐겁고 신나야 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이 문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 문제가 어쩌다 저 문제로 커졌는지 설명해주면 학생들은 나름 알아듣는 것 같았다. 시절이 학생운동의 여력이 아직 남아있을 때라서 그런지, 철학과 현실의 관계를 지적하면 시나브로 빠져들기도 했다. 철학의 문제는 토론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이런 수업 처음이라는 둥, 대학수업의 참맛을 알겠다는 둥 좋은 이야기도 꽤 들었다. 

그때 만난 학생들과 인연이 생겨 동아리 지도교수도 해주고 주례도 서줬으며, 지금까지도 연락이 올 정도니, 교양이라고 해서 학생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교양은 젊은 학생들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원생이 많아지면서 교양을 하지 않아도 되어 손을 놓았는데 그게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이 ‘내가 잘하는 것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내가 있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전공이랍시고 깊이 있게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공을 넘어 사회적인 효용성안에서 자신을 요청하는 곳에 서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외국으로 파견 나가 있을 때 내게 사무치게 다가온 것이 바로 ‘전공을 넘어선 교양의 필요성’이었다 내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아는 것도 중요했다. 자기 분야를 어렵게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을 쉽게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내가 잘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나를 바라는 곳에 있자’는 것이었다. 

그래봤자 다시금 시도한 교양에 대한 도전은 실패였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학생이 바뀐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바뀐 것이었다. 학생운동도 관심이 없었고, 국가사업도 관심이 없었다. 작고도 작게 개인화되는 시절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해보다 자리를 잡은 것이 ‘다문화와 세계종교 기행’, ‘영화 속의 철학’이다. 앞의 것은 들쭉날쭉했지만 온라인 강의(K-MOOC)가 되면서 안착한 것 같고, 뒤의 것은 첫날 과목 설명 이후 반은 도망가지만 살아남은 자는 열성분자가 된다. 

얼마 전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을 하시던 손동현 교수님이 책을 보내준다고 연락이 왔다. 재직하던 곳에서 학부대학을 만들어낸 교양전도사이자, 퇴임 후에도 여러 대학의 교양교육을 안착시키는 키잡이이시다. 한마디로 ‘교양인문학 조종사’(the liberal art pilot)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나도 숟가락을 올려놓은 적이 있다. 

내식대로 이해한 그분의 주장은 이렇다. 인문학이 교양교육으로 오지 않고 학과에서 머무는 한 인문학은 망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 뜨더라도 인문대학은 쪼그라든다. 인문학을 망치는 것은 인문학계의 전공주의, 정확히 말하면 과 이기주의 때문이다. 교양 한 번 바꾸려면 과끼리 전쟁이 나는 것이 좋은 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힘들다더니 내가 바로 그 꼴이다. 교양, 일단 학생이 많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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